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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값 1200원 한때 뚫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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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환율 방어의 1차 마지노선인 원-달러 1200원 선이 장중 무너졌다. 당국의 개입으로 막판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가치는 지난 주말보다 15.9원 내린 1194원으로 마감됐다. 장중 변동폭이 20원에 달하는 롤러코스터 장세였다. 증권계 관계자는 “달러당 1200원에 맞춰 투자계획을 다시 짜야 할 때”라며 “이미 자금이 주식시장을 떠나 초우량국가 채권 등 ‘초안전자산’으로 이동 중”이라고 말했다.

 장 초반 분위기는 암울했다. 연휴기간 중 쌓인 악재가 시장을 짓눌렀다. 그리스의 국가 부도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굳어졌고, 이에 놀란 미국·유럽 증시는 이틀 연속 급락했다. 오전 9시 전날보다 21.9원 급등한 1200원에 첫 거래가 성사됐다. 개장 직후 국내 증시에 사이드카가 발동됐다는 소식은 원화 약세를 부추겼다. 오전 9시47분 원화가치가 달러당 1208.2원까지 미끄럼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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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는 낮 12시를 전후해 반전됐다. 오전 11시가 넘어 “과도한 쏠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당국의 입장이 전해졌다. 눈치를 보는 시장에 ‘달러 매도’ 주문이 많아지자 ‘당국의 개입’이라는 해석이 나돌았다. 외환은행 외환운용팀 고규연 대리는 “표시가 나는 개입은 없었지만 더 오르기 힘들 거란 경계심이 확산됐다”고 전했다. 오후 1시를 넘기자 당국의 독려를 받은 수출기업들의 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조선업체 등에서 근래 보기 힘들었던 단위로 달러가 나왔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말이다. 당국은 지난주 주요 대기업의 외환 관계자들을 불러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붙잡고 있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시가 하락폭을 좁히고, 국공채를 사기 위한 달러 자금이 유입된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원화가치는 오후 2시20분쯤 1188.25원까지 반등하다 소폭 밀리며 장을 마감했다.

 시장은 당분간 원화가치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럽계 은행 자금 경색으로 한국에서 자금이 유출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마침 국내 무역수지도 안 좋게 나와 달러 선호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환율이 급등하는) 추세를 거스를 순 없다”고 말했다. 골드먼삭스는 최근 “외환 당국이 강하게 개입하면 원화가치가 달러당 1200원 미만을 지킬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 달러당 1430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당국은 시장안정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날 장 마감 뒤 간담회에서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필요 시 관계기관과 적절한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신 차관은 “2008년 2000억 달러 선이던 외환보유액이 3000억 달러로 늘어났다”며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되 급등락을 완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의 입장은 일방적인 기대나 쏠림이 나타날 때는 개입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에서 좀 더 나간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신 차관은 그러나 주요 20개국(G20) 차원의 통화스와프 추진에 대해선 “한·미 스와프 등은 우리 펀더멘털 수준을 감안하면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외환보유액을 민간에 직접 공급하는 것도 “민간의 자구 노력이 우선이고 지금은 그런 단계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나현철·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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