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콘서트-충동!충돌!

중앙일보

입력

동서양의 음식을 한 접시에 올려 놓았다고 모두 퓨전푸드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악가와 재즈 보컬리스트가 한 무대에 서고 클래식 작곡가가 팝음악을 작곡한다고 해서 수준 높은 작품이 탄생한다는 법은 없다.

지난 2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2000 새로운 예술의 해' 행사로 열린 '퓨전콘서트 2000-충동! 충돌!'을 보면서 느낀 것은 클래식 작곡가들이 대중음악의 어법을 제대로 구사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 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이다.

'국내 현대음악의 거장들이 작곡한 대중음악'을 통해 상아탑에 안주하는 창작음악과 10대 취향 위주로 흐르는 대중음악계 모두에 자극을 주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이날 공연에서 무대를 이끌고 간 것은 대중음악이다. 작곡가들의 역할이 미미했다는 말이다.

많게는 10명이 출연하는 작품을 한 달만에 완성하고 두차례의 연습을 거쳐 무대에 올려야 했던 음악들이다.

악보를 통해 작곡가가 지시한대로 연주한 부분은 극히 일부였다.

심지어 이미 발표된 구본우의 가곡 '귀천', 강석희의 '프로메테우스 오다' 등이 거의 그대로 등장했다.

그래서 작곡가들에게 '음악감독'이라는 애매한 호칭을 부여한지도 모른다. 나머지는 공연 시간을 채우기 위해 평소 연주하던 것을 편집해 지겹게 반복할 뿐이었다.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등 재즈 히트곡을 부른 서영은과 다소 거친 무대를 보인 힙합그룹 '거리의 시인들' 등의 단독무대가 줄을 이었다.

크로스오버 경험이 많은 사물놀이의 장단도 너무 많은 악기와의 '충돌'로 빛을 보지 못했다.

차라리 대중음악을 들으며 성장해온 젊은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맡겼더라면 어땠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