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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일 적지, 연봉 오르지, 대접 잘 받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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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

공무원을 ‘정부미(米)’, 민간인을 ‘일반미’라고 부르는 우스개가 있다. 공무원은 정부미처럼 맛이 없고, 시장에서 경쟁도 않는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원래 정부미는 주로 군 장병과 사회취약계층 등에게 공급되는 쌀이다. 일반미와 똑같은데 양곡창고에 오래 갇혀 있다 보니 밥맛이 떨어져 환영받지 못한다. 이미지를 바꾸겠다며 정부는 2008년 그 이름을 ‘나라미’로 바꿨다. 근본적인 보관·유통과정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름만 바꾼다고 맛이 좋아졌을까.

 정부미가 일반미 맛을 보게 하려는 발상은 김대중 정부 때 나왔다. 바로 2001년 도입된 공무원 고용휴직제(雇傭休職制)다. 세상 물정 어둡고 경쟁을 외면하는 관료들에게 치열한 시장원리를 체험케 해 경쟁력(맛)을 높이자는 뜻이었다. 최소 2년간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며 휴직할 수 있고, 연장도 가능하도록 했다. 취지대로라면 민간 마인드를 행정에 접목하고, 자극도 받을 수 있는 좋은 제도다. 창고에 갇힌 정부미를 통풍(通風)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고용휴직제는 관료들의 현관우대(現官優待) 특혜로 전락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공무원이 민간에게는 늘 갑(甲)이기 때문이다. 대학·연구소·기업 등은 외출 온 관료들의 연봉을 민간 수준으로 올려주고 극진히 대접했다. 관료들은 이를 즐겼다. 인사에서 물먹은 이들은 피난처로도 이용했다. 민간은 민간대로 잘 모시면 후일 든든한 ‘백’이 된다는 계산을 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지 않은가. 다음은 기자가 만났던 관료들이다.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어땠나.

 “그립다. 일 적지, 연봉 확 오르지, 대접 잘 받지. 공무원끼리 일하는 게 재미없다.”

 지방공무원 A씨는 복귀한 뒤 적응을 못했다. 대접 받던 향수만 생각하다 겉돌았다. 결국 무능력자로 찍혀 옷을 벗었다. 고용휴직이 독(毒)이 된 것이다.

 -캠퍼스 생활이 어떤가.

 “대학엔 일주일에 사흘 나간다. 아무도 간섭 않는다. 복귀하면 보고서만 간단히 쓰면 돼 부담도 없다.”

 중앙부처 공무원인 B씨는 고시 출신이다. 그도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민간 경험 쌓기를 게을리하는 인상이었다. 두 사람 얘기는 전적으로 기자의 사적 소회다. 물론 민간에서 많이 배워 실력이 탄탄해진 이들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올해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오른 현관예우 문제는 ‘베짱이’ 관료를 양산하는 제도의 모순을 극명히 보여줬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행정안전부가 대표적으로 뭇매를 맞았다. 교과부 모 국장은 민간 연구소에서 휴직 전보다 78%나 많은 연간 1억5102만원을 받았다. 2008년부터 올 8월까지 고용휴직을 통해 유관기관에 취업한 교과부 공무원이 90명이다(민주당 김유정 의원). 전관예우도 융숭하다. 최근 5년간 교과부 3급 이상 퇴직자 103명 중 24명(23%)이 산하기관이나 유관단체, 대학 등에 재취업했다. 대학이 이들을 방패막이로 영입한 것이란 지적이 있었다. 행안부 공무원은 근무 중 용돈을 벌었다. 2009년부터 올해 6월까지 559명이 산하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받은 강연료만 2억6012만원이다(한나라당 김태원 의원).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산하기관과 사업발주가 많은 국토해양부·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 등 경제부처나 법무부 공무원은 어떻겠는가.

 고용휴직제는 정부 부처와 지자체별로 실시 중이다. 정부는 고용휴직 중인 전체 공무원 숫자도 파악 못하고 있다. 일을 허투루 해도 대접받고, 민간의 연줄 대기 수단으로 전락한 고용휴직제는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 정부미를 맛나게 하지 못하는 제도라면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