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집주인에게 한우 보냈어요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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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기자]

1년째 지속되고 있는 전세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셋값은 떨어질 줄 모르고 이제나저제나 전셋값이 내리기 바라는 서민들은 지쳐가고 있다.

장기화하는 전세난에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1.

“이 집 살기 불편해요”…세입자가 뿔났다

경기도 판교신도시 삼평동 P공인 권 사장은 요즘 난감하다. 고객들과 전셋집을 보러 가기가 어렵다. 기존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이 예민하기 때문이다.

입주 2년만에 전셋값이 1억원 이상 오르면서 재계약을 포기하고 싼 집으로 이사 나가야 하는 기존 세입자들이 집 보러 오는 걸 싫어한다.

도로 인근 아파트를 보러 가면 거실 창을 모두 열어 두고 “이 집 시끄러워서 밤에 잠 잘 못잔다”고 말하기 일쑤. 곰팡이가 핀 세탁실을 꼼꼼히 보여주기도 한다.

권 사장은 “오른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이사 나가야 하는 기존 세입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세입자에 대해 상대적인 박탈감도 느끼는 것 같다”며 “그런 식으로나마 울분을 푸는 것”이라고 말했다.

#2.

“3억 이하에는 전세 내놓지 마세요”…전셋값 담합 등장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L공인 이 사장은 최근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에서 최후 통첩을 받았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L공인에 전세물건을 내놓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유는 이 사장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때문이다.

이 사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인근 아파트 등 매물의 실거래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아파트의 전셋값이 너무 낮게 기재됐다는 것이다. 84㎡형(이하 전용면적) 전셋값이 2억6000만원이라고 올렸지만 입주자대표회는 3억4000만원으로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이 사장은 “국토부에서 제공하는 실거래가 정보를 올렸다고 말해도 ‘우리가 3억4000만원이라는데 왜 말을 듣지 않느냐, 수정하지 않으면 거기서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3.

“명절에 집주인에게 선물 보냈어요”…전세 재계약 위해 집주인에 굽신

서울 광진구 광장동 B아파트에 전세를 사는 황모씨는 추석에 집주인에게 한우갈비세트를 보냈다. 지난 설에는 와인을 보냈다. 내년 2월 전세 재계약을 할 때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다.

황씨는 “중학생인 딸의 교육도 신경 쓰이고 처갓집이 같은 동네라 다른 동네로 이사하기가 마땅찮은 데다 근처 아파트들도 전셋값이 많이 올라 재계약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물을 받으면 아무래도 재계약할 때 집주인이 전셋값을 조금이라도 덜 올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C아파트에 사는 이모씨도 12월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난다. 이사할 곳이 마땅치 않아 전셋값을 올려주더라도 재계약을 하려고 한다. 입주한지 15년이 넘은 아파트라 이런 저런 하자가 있지만 웬만한 집 수리는 집주인에게 연락하지 않고 ‘알아서’ 처리한다.

얼마 전에는 세면대 하수관이 낡아 교체했지만 집주인에게 수리비를 청구하지 않았다. 이씨는 “수리비라고 해봐야 수십만원인데 전셋값 수천만원을 올려줘야 하는 상황에서 집주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연락도 안했다”고 말했다

#4.

“비싼 전셋값 감당 못해 지방 가요”…지방 지사 근무 인기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사는 박모씨. L전자에 다니는 박모씨는 얼마 전 대전 지사 근무를 신청했다. 집주인은 전셋값을 8000만원 올려달라고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전셋값으로는 마땅히 이사할 곳도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적어도 5000만원 이상 대출을 받아야 전셋집을 구할 수 있는데 빠듯한 살림살이에 여유가 없어 아내와 상의해 지방으로 내려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씨가 살고 있는 D아파트 59㎡형 전세값은 2년전 2억원에서 2억8000만원으로 올랐다. 대전에서 번화가로 꼽히는 유성구의 84㎡ 아파트 전셋값은 1억5000만원선이다.

박씨는 “큰 집에서 살면서 오히려 5000만원 여유자금도 생기게 돼 발령이 빨리 나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회사도 그렇고 주변에 지방 근무를 고려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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