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양승태 대법원장, 사법부에서 이념 걷어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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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승태 신임 대법원장 앞에는 숱한 난제(難題)가 기다리고 있다. 지난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는 분쟁 조정자로서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오히려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기까지 했다. 양 대법원장은 어제 취임식에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결코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자신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의 사법부에 실망할수록 새 대법원장에게 거는 국민 기대는 더욱 크다.

 양 대법원장에게 최대 도전은 사법부에서 이념의 색깔을 빼는 일이다. 그는 “사법부의 사명은 법치주의를 구현함으로써 일관성이 유지되고 예측 가능성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했다. 법에는 좌와 우가 있을 수 없고, 진보와 보수로 가를 잣대도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사사건건 이념적으로 충돌한다. 최근 역사교과서 문제는 웅변한다.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를 놓고 황당한 격론을 벌인다. 이런 현상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횡행하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재판과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강기갑 의원 공중부양 사건, MBC PD수첩 사건 등에서 나온 편향 판결 논란에다 “북한을 반(反)국가단체로만 볼 수 없다”는 대법관의 인식까지 공개되는 지경이다. 개인 소신과 성향을 저울과 칼이어야 할 법과 구분하지 못하는 법관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일반인이 나라의 정체성과 체제에 대해 헷갈리지 않는다면 이상할 정도다.

 결국 사람의 문제다. 양 대법원장은 자신의 법관론을 피력했다. “(법관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결한 인격과 높은 경륜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인식을 국민 뇌리에 심겠다고 했다. 그 시험대는 곧 예정된 새 대법관 제청이 될 것이다. 11월 김지형·박시환 대법관이 6년 임기를 마친다. 두 대법관은 진보 성향이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대법관의 후임에 양 대법원장이 누구를 제청하느냐가 관심거리다. 박일환·김능환·전수안·안대희 대법관도 내년 7월 물러난다. 양 대법원장은 임기 1년 안에 대법관 6명을 교체하면서 대법관을 균형 잡힌 면모로 일신해야 한다.

 전임자의 우(愚)는 반면교사다.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조인이 대거 요직에 등용되면서 용비어천가를 읊었던 코드인사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념이나 색깔에서 벗어나 권력 눈치를 보지 않고 사법부 독립을 지켜낼 인물을 중용해야 한다.

 각종 사법개혁도 멈출 수 없는 과제다. 양 대법원장은 “재판은 한 번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 원칙이 돼야 한다”고 했다. 경륜이 부족한 젊은 판사들의 막말과 튀는 판결은 사법 불신의 한 요인이었다. 경륜 있는 판사를 1심에 배치해 1심 재판의 품질을 높이겠다는 구상은 바람직하다.

 대법원장은 법치의 상징이다.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잘못된 관행에 젖은 사법부를 개혁하는 시대정신의 돛을 국민은 갈구한다. 분열과 갈등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내는 통합의 리더십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