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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는 말한다 … 금 투자 ‘탐욕의 역류’ 조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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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은 사람들의 ‘탐욕’에서 비롯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금융위기 전문가인 고(故) 찰스 킨들버거 MIT대학 교수는 다른 주장을 폈다. 그는 “버블은 대중의 ‘상식’을 바탕으로 부풀어 오른다”고 말했다. 대중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이유나 논리가 있어야 된다는 얘기다. 실제 주택 버블의 이면엔‘인구 증가→집값 상승’이나 ‘집은 모든 인간의 필수품’ 등의 상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19세기 초 철도와 20세기 말 인터넷 거품 배후엔 ‘교통·소통 수단 혁명→생산성 증가’라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요즘 금값의 급등 이면에도 대중의 상식이 버티고 있다. 미국 상품 전문가인 데니스 가트먼은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통화량이 늘어나면 인플레이션이 오기 마련이고, 인플레 시대엔 금이 최고란 상식 덕분에 금값이 뛰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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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와 금값 어디로 가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유럽중앙은행(ECB)·일본은행(BOJ) 등 세계의 중앙은행들은 주택시장 붕괴로 신용경색이 일기 시작한 2007년 8월 이후 돈을 뿌렸다. 실제 인플레 조짐도 나타났다. 식료품과 에너지 값이 많이 올랐다. 교통 요금 등 서비스 요금도 들썩였다. 이는 ‘통화량 증가→인플레’란 상식을 강화시켰다. 그 결과 (명목) 금값이 얼마 전 온스(31.1g)당 1900달러에 육박하기도 했다. 세계 금 전문가의 견해를 종합하면 “상승 속도는 둔해지겠지만 금값이 내년엔 2000달러를 넘을 것”이란 전망이 대세였다.

 금값을 둘러싼 대중의 상식은 과연 맞아 떨어질까? 돈을 살포하는 주역이란 의미에서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벤 버냉키(58) FRB 의장의 견해가 궁금하다. 그는 “꼭 그런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개인적인 의견을 밝힌 게 아니다. FRB 금융통화정책 기구인 공개시장 위원회(FOMC)의 성명을 통해서였다.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20~21일 회의까지 올 들어 시종일관 “인플레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버냉키는 “에너지와 식료품 등 ‘일시적인 요인들’ 때문에 올해 초 인플레 압력이 커지기는 했지만, 인플레 기대 심리는 장기적으로 안정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진단했다. 근거는 무엇일까. “경기 회복이 느리고 일자리가 빠르게 늘지 않아 ‘생산 요소’가 충분히 활용되고 있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생산 요소는 노동과 자본이다. 현재 시장엔 고용되지 않은 노동자가 너무 많고 투자되지 않은 자본도 넘쳐난다는 얘기다. 기업이 언제든 싼값에 직원을 채용하고 자본을 끌어다 투자할 수도 있다. 실제 미국 노동부가 매달 발표하는 고용비용지수는 여전히 침체국면에 머물고 있다. 버냉키가 “2013년 중반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것도 이 때문으로 봐야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임금 상승률이 낮고 자본의 값(금리)이 쌀 땐 ‘통화량 증가→인플레’가 일어나기 힘들다”고 누차 강조했다. 거꾸로 말하면 풀린 돈이 물가를 밀어올리기 위해선 생산요소 가격, 그중에서도 임금이 먼저 올라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앞으로 임금이 과연 인플레를 자극할 정도로 오를 수 있을까? 판단은 투자자들의 몫이다.

 미국의 투자자문가인 닉 에델먼은 “인플레가 일어날지 불확실한데도 시장 참여자들은 일어난다는 쪽에 베팅하고 있다”며 “1980년의 교훈을 돌아보라”고 주문했다. 그해 1월 금값이 치솟았다. 온스당 850달러까지 올랐다. 실질 가치로 따지면 지금보다도 높은 수준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때도 인플레 우려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79년에 발생한 이란혁명과 유가급등이 이를 거들었다.

 그러나 대중의 상식을 바탕으로 부풀어 올랐던 거품은 허무하게 붕괴했다. 금값은 80년 1월 21일 고점에 이른 뒤 미끄러졌다. 미 FRB의 긴축이 야기한 경기침체와 물가안정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후 금 시장은 20년 넘게 침체의 수렁에 빠졌다. 그 시절 금 보유자들은 이자도 배당도 받을 수 없는 황금 덩이를 보며 한숨만 내쉬어야 했다. 황금을 탐한 대가였던 셈이다.

 상품 전문가인 가트먼은 색다른 주장을 폈다. 그는 “요즘 금값에 맞는 인플레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본 적 있는가”라고 물은 뒤 “내가 보기엔 인플레가 연 15% 이상 돼야 지금의 금값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로 따져 미국의 4배, 한국의 3배 이상이다. 그는 “닷컴 거품 시절 주가가 엄청난 미래 순익을 가정하고 있었던 것처럼 요즘 금값은 살인적인 인플레를 전제로 하고 있다”며 “버냉키뿐 아니라 세계 어느 중앙은행가도 물가가 연간 15%나 오르도록 놔두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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