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세계는 지금 변화중] 上. 오프라인 골리앗들의 반격

중앙일보

입력

세계의 '닷컴기업' 들이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첨단기술주 폭락사태 이후 더이상 벤처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업계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투자자들의 옥석 가리기도 본격화하고 있다.

오프라인의 거대 기업들도 속속 벤처 영토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위기 상황을 맞아 세계 벤처업계가 변화하는 모습들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인 미국 월마트의 인터넷 사업 책임자 서너명이 이달 초 실리콘 밸리의 벤처캐피털 회사인 '엑셀 파트너즈' 를 찾았다.

이들에겐 월마트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월마트닷컴을 진짜(□) 인터넷 기업으로 만들라는 경영진의 특명이 주어져 있었다.

엑셀 간부들에게 전달된 월마트측의 주문은 절박했다.

월마트닷컴이 최단기간에 스스로 상품의 가격과 마케팅 방법을 결정하고, 직원들의 보수도 벤처기업에 걸맞은 독자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조언해 달라는 것이었다.

엑셀은 두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월마트닷컴의 경영을 인터넷 전문가들에게 일임하고, 둘째 필요한 투자를 우물쭈물하지 말고 신속히 하라는 것. 인터넷 최고의 쇼핑몰을 목표로 하고 있는 월마트닷컴은 현재 이 제안에 따라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인터넷은 더 이상 벤처기업들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곳에 미래의 비즈니스가 있는 한 월마트 같은 골리앗들이 앞으로 봇물 터지듯 진출할 것입니다."

지난 1일 정보기술전문지인 '인포메이션 위크' 와의 인터뷰에서 퍼스트 데이터사의 인터넷 상거래담당인 존 덩컨 상무가 한 말이다.

세계적 대기업들은 현재 다투어 인터넷 영역으로 밀고 들어가고 있다.

장래성 있는 벤처기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벤처를 차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주가폭락사태 이후 자금부족에 허덕이는 닷컴사들에는 또 하나의 큰 위협인 셈이다.

대기업들이 인터넷 분야에 속속 진출하는 이유는 ▶인터넷이라는 범세계적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고▶닷컴 회사들이 가진 혁신성과 신속성에 대기업들의 경영 노하우와 자본을 결합,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IBM은 지난달 태국의 네이션그룹과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타일랜드 닷컴' 을 6월 공동 개설키로 했다고 밝혔다.

태국 고객들이 원하는 여행.수출.투자.사업소식 등 다양한 정보 서비스는 네이션그룹이 맡고 e-비즈니스에 필요한 각종 솔루션은 IBM이 제공하기로 했다. 이른바 윈-윈 전략을 구사하려는 것이다.

당시 네이션그룹은 "대기업이라고 포털을 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사이트의 수익성을 생각하면 경영 노하우를 가진 대기업이 인터넷 비즈니스에 더 적합하다" 고 밝혔다.

휴렛패커드는 아예 회사 자체를 벤처로 바꿔버렸다.

지난해 말 회사 로고에 '창안하자(invent)' 는 문구를 넣어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더니 올 초부터는 아예 60년 전 창고에서 시작한 벤처정신(garage spirit)으로 돌아가자는 캠페인을 전개 중이다.

회사 조직은 물론 개인도 벤처화하자는 취지다. 칼피 피올리나 회장은 "휴렛패커드는 더 이상 오프라인 기업이 아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첨단 기술력과 신속성을 지닌 벤처기업" 이라고 선언했다.

인포메이션 위크지는 이달 초 자사가 선정한 5백대 하이테크 기업의 절반 이상이 벤처투자 혹은 벤처 설립을 했다고 밝혔다.

벤처기업 조사회사인 벤처원에 따르면 미국 대기업들의 지난해 벤처투자 및 창업자금은 전년의 세배인 2백20억달러에 달했다. 올해는 4백억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월마트의 아성에 도전하는 미국의 K마트도 최근 일본의 소프트뱅크벤처와 공동으로 쇼핑과 인터넷 접속을 동시에 서비스하는 블루라이트닷컴을 설립했다.

유통업체에 인터넷 접속서비스라는 벤처정신을 섞겠다는 게 K마트측의 설명이다.

이들은 당장의 수익성 만을 위해 인터넷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수년간 공개적으로 인터넷 진출을 않겠다고 선언했던 종합제조업체 텍스트론의 최고경영자(CEO) 케네스 볼렌은 올초 인터넷 투자회사인 세이프가드 사이언티픽스와 1억달러 투자를 결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

"꼭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현재로도 만족한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뭔가가 있다. 바로 정보다."

골리앗 기업들의 진출은 당장 닷컴사들의 목줄을 죄고 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에 인터넷 빌링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는 퍼스트데이터는 최근 회사의 빌링 모델을 지적재산권으로 등록했다.

유사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이 자사 소프트웨어를 참고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퍼스트와 유사한 빌링 소프트웨어를 제공했던 벤처의 30%가 도산 직전에 이르렀다. 퍼스트그룹은 최근엔 온라인 마케팅 인센티브를 개발하는 이클립닷컴사의 경영에도 참여했다.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벤처 전 영역으로 확산하려는 시도다.

최형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