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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를 버려야 유럽이 산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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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호 20면

경고는 있었다. 유로화 출범 전 많은 경제학자는 단일 통화가 여러 국가에 적용될 수 있을지 우려했다. 유로존의 위기는 그 우려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실패한 실험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 강대국 손에 달렸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유로화의 혜택이 없지는 않았다. 환전 비용은 사라졌고, 환변동 리스크도 줄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최적의 통화권(optimal currency area)’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뤘는지는 의문이다. 한 국가의 금리가 다른 국가에 그대로 적용되기에 무리가 있다. 강력한 중앙정부가 있다면 적절치 않은 통화정책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할 수 있겠지만 유로존은 그렇지 않다.

유로화를 옹호하는 이들은 유로존이 결국 ‘최적의 통화권’이 될 것이라는 긍정론을 받아들였다. 강력한 경제 통합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견고한 통합을 이룰 것이란 얘기였다. 잠시 긍정론대로인 듯했다. 경제 통합을 이뤘고 유럽연합(EU)의 힘은 커졌다. 하지만 유로화 때문에 그리스처럼 방탕한 국가는 독일처럼 검약한 국가로부터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외환시장 개입 등을 통한 통화가치의 조정으로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유로존 전체를 전제로 고안된 정책은 주변국보다 프랑스·독일처럼 경제 규모가 큰 국가에 적합할 수밖에 없다. 바클레이스 캐피털의 보고서는 “유럽 통화정책은 유로존 전체가 아니라, 독일에 부합하는 추세다”라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금리는 그리스·스페인·아일랜드에 적절한 수준보다 낮거나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유로존에 포함되지 못한 폴란드는 자국 통화가치를 낮춤으로써 위기를 잘 넘기고 있다.

지난 20년간 유럽 엘리트들은 유럽 통합을 저해하는 표현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유로화는 경제적 목적보다는 정치적 비전을 바탕으로 시작된 무모한 도박이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최근 “(유로가) 미래를 공유하고자 하는 유럽인들의 뜻을 구현할 것이다. 우리는 위기를 통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에 빠진 유럽에 진정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정치적 통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 정서는 확산 중이고, 독일은 위기에 말려들까 쩔쩔매는 모양새다.

현명한 길은 유로를 버리는 것이다. 곤경에 빠진 국가가 떠날 수는 없다. 이들이 발을 떼는 순간 뱅크런이 벌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과 구제금융을 피하고자 하는 독일 등이 떠나는 수밖에 없다. 독일은 경제적으로 보다 유사한 북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통화를 창출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남은 유로 국가는 새로운 통화에 대한 현실적 환율을 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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