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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억 인출” 다시 보니 473억 … 토마토2 살리려 묵인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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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20일 오후 5시30분 국회 정무위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장. 한 의원이 토마토2저축은행의 예금 인출 규모를 묻자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오후 4시까지 400억원가량 나간 걸로 집계됐다”고 답했다. 하지만 1시간여 뒤 저축은행중앙회가 내놓은 수치는 전혀 달랐다. 중앙회는 “오후 4시까지 320억원이 인출돼 전날 같은 시간대(416억원)보다 크게 줄어들었다”고 강조했다. 이 수치는 다음 날 또 바뀌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21일 합동 브리핑에서 “20일 인출 규모가 473억원”이라고 수정했다.

 토마토2저축은행의 예금 인출액이 엿가락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고 있다. 해당 저축은행과 저축은행중앙회·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내놓는 하루 인출액 통계가 많게는 150억원까지 차이가 난다. 대량예금인출(뱅크런)을 막기 위해 당국이 부정확한 통계를 묵인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토마토2저축은행은 금융당국이 설정한 마지노선이다. 금융당국은 이곳의 인출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하면 영업정지를 유예받은 5개 저축은행으로 뱅크런이 확산될 수 있다고 보고 어떻게든 살린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21일 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영업정지된 토마토저축은행의 계열사인 토마토2저축은행의 인출 규모는 19일 487억원, 20일 473억원에 달했다. 21일 오후 6시까지는 393억원이 빠져나갔다. “창구에서 대기 중인 고객들과 야간에 인터넷 뱅킹을 통해 해지되는 걸 감안하면 전날 못지않게 인출될 것”으로 중앙회 측은 내다봤다.

 이 같은 수치는 그동안 업계가 밝혀온 것과 큰 차이가 있다. 해당 저축은행과 중앙회는 그동안 19일 416억원, 20일 320억원이 빠져나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빠져나간 금액보다 각각 71억원, 153억원 적다. 금감원 관계자도 “집계하는 시간대나 방식에 따른 차이라기엔 너무 큰 차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 저축은행 대표도 “인터넷과 창구가 구분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입출금 총액은 실시간으로 파악되고 매시간 집계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태도도 석연치 않다. 금감원은 21일 처음으로 자체 파악한 인출 규모를 공개했다. “중앙회 수치가 왜 축소됐는지 경위를 파악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전까진 중앙회 수치를 그대로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20일 “어제와 달리 인출액이 3분의 2가량으로 줄었다”고 했다. 21일 오전에는 “오늘은 또 어제의 절반가량”이라고 말했다. 중앙회의 셈범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확한 인출 규모를 알고 있던 당국이 저축은행과 중앙회가 규모를 줄여 보고하는 걸 모를 리 없다”며 “뱅크런을 진정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당국이 신뢰를 잃게 되면 더 큰 손실”이라고 했다.

 인터넷 뱅킹을 통한 인출이 급증하는데도 “창구 인출이 줄고 있다”는 말만 거듭해온 것도 문제다. 토마토2저축은행의 창구 인출액은 19일 343억원에서 20일 211억원으로 줄었다. 반면 인터넷 뱅킹을 통한 예금 해지는 같은 기간 144억원에서 252억원으로 급증했다. 번거롭게 대기표를 받아 줄을 서기보다 조용히 컴퓨터에 앉아 돈을 빼는 고객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20일부터 만기가 된 예금은 인터넷 뱅킹으로도 찾을 수 있도록 한 게 인출 액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해명했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20일 오후 토마토2저축은행 대전지점을 둘러본 뒤 “고객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만기예금에 한해 그동안 막혀 있던 인터넷 해지를 허용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던 이들 고객이 집이나 회사에서 예금을 찾는 경우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러 인출액 통계를 줄이도록 유도하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며 “고객들의 불안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동안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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