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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기에 놓인 미디어 시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들어 목동 한국통신사옥이나 강남의 데이콤(DSM)빌딩을 들락거리는 외국인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다름 아닌 세계적인 위성 방송 업계 관계자들이다. 스타 TV로 유명한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프 그룹측을 비롯하여 휴즈 일렉트로닉스(디렉TV), 베르텔스만 등 세계 굴지의 위성 사업체들이 한국행을 서두르고 있다.

이른바 한국 미디어 업계의 개항이 눈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다. 서양 상선이나 전도사들은 언제나 내부 협력자와 함께 일을 도모하는 법. 이미 상업용 위성방송 시장 진출을 선언한 한국통신과 DSM(DACOM Satellite Multimedia System)이 그런 채널역할을 도맡고 있다. 이들은 오는 8월까지로 예정돼 있는 상업용 위성 방송 사업자 선정에 대비, 일대 격돌을 준비하고 있다.

데이콤의 자회사인 DSM은 이동통신업체인 SK텔레콤과 중앙일간지등을 비롯해 기존 케이블TV 프로그램공급업자(PP), 신규채널 PP, 독립프로덕션, 인터넷업체, 수신기 제조업체 등 총 82개 업체 및 기관과 다자간 공동경영구도를 모색 중이다. 뉴스코프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DSM은 지난 1998년 루퍼트 머독 뉴스코프 회장이 내한해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서 위성 방송 사업을 위한 외자 진출에 관한 다짐을 얻어냈다는 일화에 내심 기대를 걸고 있다. DSM의 컨소시엄에는 뉴스코퍼레이션 SK텔레콤 동아일보사 디지틀조선일보 대림정보통신 대상㈜ 동원산업 롯데쇼핑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한솔텔레콤이 참여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최근 통신과 방송의 통합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한국통신도 범연합전선을 발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한통은 보유하고 있는 무궁화위성을 매력 포인트로 삼아 삼성,현대,한화 등 대기업과 위성방송사업을 공동 추진한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제일제당과 동양제과도 최근 위성방송 사업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키로 했다. 언론사중에서는 지상파방송사인 MBC에 협력을 구한데 이어 신문사, 장비제조업체 등으로 세(勢)불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같은 상업용 위성방송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일대 격돌의 양상은 한국 미디어 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대격변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뉴미디어, 개방, 그리고 통합방송법 이후의 달라진 미디어 환경

우리 미디어 업계는 지금 크게 봐서 뉴미디어, 개방, 그리고 통합방송법 이후의 달라진 미디어 환경 이라는 3가지 도전에 직면해있다. 특히 올해안에 결판을 내야하고 올연말부터는 미디어 수용자에게 1백개이상 3자릿수 채널을 제작, 공급하게끔 규정하고 있는 상업용 위성 방송 사업자 선정 관련 이슈(통합방송법)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우선 뉴미디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디지털 위성 방송 그 자체가 뉴미디어의 전형이다. 왜냐하면 첫번째,미디어 통합(Media Convergence)가 여기서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디어 통합은 1994년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우리 실생활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화로 상징되는 통신, TV 로 상징되는 방송 그리고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컴퓨터(네트워크)가 하나로 융, 복합하는 현상이 바로 미디어 통합이다. 이에 따라 신문, 방송, 영화 등의 장르간 통합도 파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올들어 순수 소프트웨어 업체인 오라클이 자사 홈페이지를 전문 인터넷 방송 포털로 개조하여 자사 제품의 동영상 홍보에서부터 E-business 포럼 인터넷 중계 등을 감행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전자상거래와 뉴미디어의 결합이다.

B2C 및 B2B경매의 전과정을 마치 실황 방송처럼 구성해 진행함으로써 고객들이 텍스트로만 진행하는 단조로움을 씻고 화려한 그림과 설명 등 멀티 미디어 기능을 동원해 아주 효과적으로 거래를 성사시킨다는 게 기본 아이디어다. 앞으로는 구매 조달, 입찰, 발주 등 전체 전자상거래의 80%를 차지할 B2B 단계에서도 컨텐츠를 뉴미디어와 결합시키는 기발한 비즈니스 모델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뉴미디어를 기업이나 교육기관의 자체 교육, 훈련, 여가선용 등에 활용하는 것은 이미 고전이 된지 오래다. 이처럼 미디어 통합은 날로 증폭되고 있다.

두번째 빅 트렌드는 매스미디어의 종말과 마이크로 미디어 시대의 도래이다. 통합방송법은 현재 360개를 돌파한 국내 인터넷 방송과 같은 이른바 새로운 형태의 ‘유사 방송’까지를 통제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 포스트 매스미디어 시대를 준비하는 정책을 지원키 위한 법제이다. 과거 독점적 구조를 지켜왔던 국내 방송, 신문 시장이 대내외적으로 개방되고 있는 현상도 마이크로 미디어의 트렌드를 좇고 있다.

이는 개인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실로 다채로운 컨텐츠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제작 공급하고 인터액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나만의 볼거리를 확보하는 ‘마이 채널’개념이 확산되고 있는 대세를 인정하자는 주의다. 이제 미디어는 어디에나 있는 간편한 생활 필수품으로 확산되어 <퍼스널 미디어>화하고 있다.

세번째로는 단연 지구 미디어(Earth Media)의 출현이다. 이는 한국의 방송, 통신 업계가 자력으로 상업용 위성방송 사업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흐름이다. 2000년 1월 11일 뉴 미디어의 왕자AOL과 올드 미디어의 공주 타임워너가 전격 결혼을 발표했을 때 이미 세계는 미디어 제국주의의 세계 시장 제패의 야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의 미디어 기업도 핵심 역량위주로 상호 M&A를 과감하게 실행해 특성과 전문성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경쟁과 물량 공세에 대비해야 한다. 코미디 같은 얘기지만 한국MBC의 자본금은 10억원(2000년 4월 현재)이다. 이는 세계 미디어 업계 3위(매출액기준)인 뉴스코프 그룹(자본금 82억달러, 1998년 기준)의 1만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기형적이고 올 것은 오 고 부실한 재무기반을 갖고 한국의 미디어 업체들은 초무한 경쟁을 치르고 있다.

위협에 대한 철저한 성찰 필요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당장 닥친 상업용 위성 사업자 선정만해도 제외되는 연합군들의 전력 손실과 뉴미디어 참여 기회의 상실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올연말부터 시작될 수백개 채널시대에 대비할 탄탄한 펀딩(자금확보)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일본의 NHK만 해도 양질의 뉴미디어용 컨텐츠를 생산, 재생산할 수 있는 탄탄한 펀딩을 거의 마쳤다는
얘기도 들린다. 독점적 카르텔에 안주해왔던 피둥피둥한 몸집의 한국 미디어 업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해볼 시점이 지금이다.

또 억눌렸던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는 마이크로 미디어의 ‘창업가 정신’, ‘프론티어 정신’을 잘 북돋워주고 있는가도 함께 점검해야 한다. 한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던 한국적 ‘쇼’는 계속되어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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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민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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