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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메종&오브제’에서 힌트 얻다, 우리집 예쁘게 꾸미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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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프랑스 가구업체의 ‘블뢰 나투르’의 탁자 ‘에클라’. 검게 탄화시킨 껍질과 원형이 그대로 살아 있는 목질이 대조를 이룬다.

‘메종&오브제’(Maison&Objet·이하 메종)는 프랑스 파리 노르 빌팽트 전시관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인테리어·디자인 박람회다. 소품부터 내외장재까지 말 그대로 집(maison)을 꾸미는 모든 물건(objet)을 전시한다. 13만5000㎡의 행사장에 3000여 개의 업체가 참여하며 8만여 명의 비즈니스·언론 관계자가 들른다. 매년 1월과 9월 두 차례 열리는데 9월에 열리는 행사는 다음 시즌 인테리어와 디자인 트렌드를 가늠하는 데 초점을 둔 전시가 많아 젊은 디자이너와 시장 선도기업이 몰린다. home&에서 9일(현지시간)부터 닷새간 열린 메종에 다녀왔다. 자연주의와 장인정신이 내년과 그 이후를 끌어갈 강력한 트렌드였다. 북유럽과 일본의 디자인이 업계의 큰 줄기로 뿌리를 내린 가운데 한국 디자이너들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을 내놓아 관람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파리=이정봉 기자
사진=메종&오브제 사무국, 서울디자인재단 등 제공

자연주의와 장인 정신이 가장 큰 흐름

1 서현진ㆍ김재경의 가구 ‘드레스트 업 스툴’ 2 일본 작가그룹 ‘주키바야시’ 소속 켄 오타의 나무 모자이크 단추 3 제랄딘 곤잘레스(프랑스)의 ‘레드 피쉬’ 4 김빈의 가구 ‘메이드 오브 체어’ 5 노지훈의 필기구 ‘필러’ 6 스튜디오 마쿠라(네덜란드)의 테이블 ‘리파’ 7 어프리(한국)의 붙임 쪽지 ‘리프 잇’ 8 아틀리에 폴리에드르(프랑스)의 도기 ‘쥐그’ 9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이너 ‘쥘&부아시에’가 디자인한 ‘카페 엘르 데코’ 10 케네스 코본푸에(필리핀)의 대나무 자동차 11 수잔 리페(프랑스)의 의자 ‘블록 오세앙’ 12 ‘오프로드’전중 공 모양의 쿠션 13 프랑스 디자인업체 ‘벤시몽 갤러리’의 의자 14 ‘개인적 편집증’전 중비닐 봉지 컬렉션 15 덴마크 디자인업체 ‘대니쉬 크래프츠’ 소속 줄리 바흐의 ‘산딸기 목걸이’ 16 이탈리아 디자인업체 셀레티의 접시 ‘하이브리드’ 17 카즈유키 가와세(일본)의 조명 ‘리아나’<사진크게보기>



메종의 8개 전시관 중 단연 관심이 몰린 곳은 7홀이었다. 다른 전시관들이 업체의 상품 진열 수준에 그치는 반면 7홀은 고급 인테리어(scènes d’intèriur), 실험적 디자인(now! design à vivre), 인테리어 기술(projets) 등의 주제로 기획 전시 3개가 동시에 열렸다. 업계를 선도하거나 새로 떠오르는 디자인 업체가 늘어서 있어 미래 트렌드를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최근 트렌드의 가장 큰 축인 자연주의 경향은 현대의 기술과 만나 인상적인 질감과 형태로 진화했다. 프랑스 가구업체 ‘블뢰 나투르’는 통나무 의자의 겉 부분을 탄화시킨 작품(큰 사진)을 내놓았다. 겉은 땅 속 깊은 곳에서 세월을 견딘 석탄 같았고 나이테 부분은 보통 목질과 다름없어 수천만 년의 세월을 한 몸에 가진 듯했다. 이 회사의 프랑크 르페브르 대표는 “새로운 소재·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자연 소재는 실제보다 더 생동감 있게 변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디자이너 케네스 코본푸에가 선보인, 태양광 발전으로 움직이는 유선형 대나무 자동차(사진 10)는 아웃도어·인도어 전시관에서 ‘가장 놀라운 전시’로 꼽혔다.

7홀 가운데 나무 판자를 이어 붙여 매끈하게 지어 올린 ‘카페 엘르 데코’(사진 9)는 이번 전시의 랜드마크였다. 메종에서 올해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선정한 ‘쥘&부아시에’가 디자인했다.

전시관 내 카페는 자연을 그대로 실내에 들이는 이번 전시회의 트렌드를 한눈에 드러내 보였다. 입구 양 옆에 이국적인 나무를 세워 자연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을 자아냈고, 울타리에는 풀을 심어 목가적 풍경을 연출했다. 인테리어 소품업체 ‘PA 디자인’의 아시아 케탕 대표는 “자연적 질감에 현대의 감성을 담은 인테리어가 최근 트렌드”라고 말했다.

대담한 디자인과 전통 기술이 접목한 인테리어 작품도 다수 선보였다. 프랑스의 공예가인 제랄딘 곤잘레스는 금속과 종이로 물고기의 뼈대를 이룬 작품 ‘레드 피시’(사진 3)를 선보였는데 고급스러운 질감과 기이한 형상이 빚어내는 부조화가 인상적이었다. 역시 프랑스 도예공방 아틀리에 폴리에드르에서 만든 도기(사진 8)는 옛 냄새 물씬 풍기는 테라코타 질감에 모던한 기하학적 형태를 부여했다.

메종은 매년 젊은 디자이너 중 잠재력이 풍부한 이를 꼽아 ‘최고의 재능(talents à la carte)’으로 선정하고 이들의 작품을 전시해 미래의 트렌드를 가늠케 한다. 디자이너 그룹 ‘주키바야시’(사진 2), 카즈유키 가와세(사진 17) 등 올해 뽑힌 6팀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일본 특유의 선(禪)적인 감성이 신예들의 작품에서도 우러나왔다. 메종 측은 “일본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실험적이면서 역동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한국의 디자인에 귀 기울인 유럽인들

서울디자인재단의 후원을 받은 젊은 한국 디자이너 18팀이 모여 있는 부스. 디자인업체들이 경연한 전시관 7홀 구석에 있었지만 관람객으로 붐볐다.


서울디자인재단의 지원으로 메종에 참가한 한국 젊은 디자이너 18팀의 60㎡짜리 부스에도 하루 1000여 건의 비즈니스 문의가 이어지는 등 유럽인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볏짚을 한데 묶은 뒤 앉는 부분만 편평하게 베어 만든 김빈의 가구 ‘메이드 오브 체어’(사진 4), 흰 세라믹으로 빚은 수십 개의 숟가락·포크 등 식기가 쏟아질 듯 매달려 있는 김하윤의 ‘커틀러리 샹들리에’는 관람객이 끊이지 않았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테리어 소품 업체 ‘메르시’ 관계자는 “김빈의 볏짚의자와 김하윤의 커틀러리 조명 등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유럽인들이 특히 반한 건 지루한 일상을 뒤엎는 한국 젊은 디자이너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제품에 담긴 소소한 이야기였다. 옷과 가구의 형태를 한데 합쳐, 벨트·지퍼 등으로 열 수 있는 가구(사진 1)를 내놓은 서현진·김재경 디자이너에게는 현지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었다. 필기구의 끝에 사과·바나나 등 대표 색깔을 지닌 물건 모양을 달아 시각장애인들도 쉽게 색깔을 알 수 있게끔 한 노지훈의 제품(사진 5)도 양산 요청을 받았다.

스웨덴 디자이너 마그누스 뢰프그렌은 “한국 디자이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용적으로 접목하는 재능이 뛰어나다”고 평했다. 디자인소품업체 알리프의 엄세영 대표는 “일본의 디자인은 장인처럼 고집스러운 면이 있는 반면 외국에 통하는 한국의 디자인은 유연하고 위트가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한국 디자인업체 어프리는 나뭇잎 모양을 본떠 만든 붙임 쪽지 ‘리프 잇’(사진 7)과 건조한 일상에 자연을 들인다는 의미를 담은 작품 ‘물방울 자석’을 내놨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감각적인 디자인에 치중해 가벼운 느낌이 든다는 지적도 있었다. 조명업체 랑프 그라의 프레데릭 윙클레르 대표는 “20년 전 대만·일본의 팬시 제품들도 반짝 인기를 누렸지만 금방 싫증 나는 형태 때문에 잊혀졌다”며 “아이디어를 넘어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시적인 디자인을 가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인테리어 3대 트렌드, 수집벽·하이브리드·오프로드

전시실은 어둡고 미로 같았다. 벽마다 비슷한 종류의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검은색 찻잔 수십 개가 진열돼 있기도 했고, 각양각색의 프린트가 찍힌 비닐봉지 수십 개가 가지런히 한쪽 벽을 채우기도 했다.(사진 14)

 전시관 3홀 입구에 설치된 ‘개인적 편집증’전은 프랑스의 디자인 트렌드 정보업체 엘리자베스 르리쉬 에이전시가 기획한 전시다. 수집한 물건을 한데 모아놓은 게 전부다. 그런데 비슷한 물건들이 한데 모이자 독특한 분위기가 공간을 압도했다. 이 회사의 엘리자베스 르리쉬 대표는 “수집벽은 과거에는 정신 질환으로 봤고, 지금도 괴상한 취미로만 바라보는 분위기가 있다”며 “하지만 찻잔이든 비닐봉지든 일관성을 갖고 공간을 채우면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로 완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르리쉬, 프랑스의 트렌드 정보 제공업체 넬리로디의 디자이너 뱅상 그레구아, 디자인 업체 크루아즈망의 프랑수아 베르나르 대표 등 ‘메종&오브제’가 선정한 8명의 디자인계 ‘오피니언 리더’들이 꼽은 향후 인테리어 트렌드 키워드는 ‘독자성(singularité)’. 페이스북·트위터 등 개인의 연결망이 강화되면서 취향이 균질해지기 쉬운데, 그럴수록 자신만의 취향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독자성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수집해 컬렉션을 만드는 것’, 둘째는 서로 다른 소재·색깔·형태를 한데 섞어 전혀 다른 분위기를 창조하는 ‘하이브리드적 구성’(사진 13·16), 셋째는 스포츠 영역에 쓰이던 소재와 형태의 물건을 집안으로 들이는 ‘오프로드’(사진 12)다. 스포츠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인 만큼 실내에 쓰이면 일상적 분위기에 자극을 주는 요소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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