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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명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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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옛날에도 값비싼 해외 명품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명품들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성호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 ‘봉사무역(奉使貿易)’조에서 해외 명품들을 무익지물(無益之物), 즉 ‘쓸데없는 물건’이라고 불렀다. 이익은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부터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자들이 은화(銀貨)를 많이 가지고 가서 채단(彩緞 : 수놓은 비단) 같은 무익지물(無益之物)들을 사왔는데 식자(識者)들도 권귀(權貴)들의 청탁을 물리칠 수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자라낭(紫羅囊)도 명품의 뜻으로 사용된다. 자줏빛 비단으로 만든 향이 나는 주머니가 자라낭인데, 진(晋) 나라 때 사현(謝玄)이 어려서부터 차고 다녔다. 이를 걱정한 숙부(叔父) 사안(謝安)이 그 마음을 상하지 않게 장난으로 내기를 해서 불태워버렸다는 일화가 송나라 진경(陳敬)이 쓴 『향보(香譜)』에 전한다.

 명품을 장물(長物)이라고도 불렀다. 일상생활에 쓸데없는 사치품이란 뜻이다.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시에 “평생 장물(長物) 하나 없고/다만 책 한 묶음만 있을 뿐이네〔平生無長物/只消書一束〕”라는 구절이 이를 말해준다. 책에 욕심이 많은 선비들은 책에는 호사를 부리기도 했다. 상아(象牙)로 만든 책갈피인 아첨(牙籤)이 그것이다. 서거정은 ‘소요정이 부친 시운에 차하다〔次逍遙亭見寄詩韻〕’라는 시에서 “또 아는 것은 그윽한 집에 장물이 있는데/아첨 만축이 서가에 가득 찼네(且識幽居長物在/牙籤萬軸滿書床)”라고 노래했다. 명품(名品)이란 말은 원래 좋은 품질의 벼루나 꽃, 차 등에 붙이는 이름이었다. 조선 초기 문신 성현(成俔)은 ‘자석산 아래를 지나며〔過紫石山下〕’라는 시에서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단계의 삼종이 모두 신품인 것을〔君不見端溪三種皆神品〕”이라고 읊었다.

 단계(端溪)는 중국 광동성(廣東省)에 있는 계곡인데, 여기에서 나는 벼루가 천하 명품(名品)이어서 신품(神品)으로까지 불렸다. 허균은 『병화사(甁花史)』라는 글에서 ‘꽃을 품평하는 자〔評花者〕’가 꽃의 등급을 ‘염품(艶品)·은품(隱品)·선품(禪品)·명품(名品)’으로 분류했다고 전한다. 도리(桃李)꽃을 요염한 염품, 국화를 은근한 은품, 연꽃을 좌선하는 선품, 모란·작약을 명품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루이뷔통이 세계 최초로 인천공항에 매장을 개장했다는 소식이다. 선조들이 봤다면 ‘무익지물점(無益之物店)’ ‘장물점(長物店)’이라고 비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