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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안철수의 거품 바이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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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지금의 정치세력에 문제가 많다고 해서 안철수 교수에게 맹목적인 예찬을 헌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동체가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할 때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안 교수는 컴퓨터 과학·경영에서는 선구자다. 그러나 역사를 평가하고 공동체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고민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다. 고뇌와 지식·경험의 축적 없이 섣불리 덤벼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위험한 장정(長征)에 나설 땐 무엇보다 자신의 행장(行裝)을 점검하고 논리와 증거로 무장해야 한다.

 안 교수는 지난 4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 집권 직후인 2008년 5월부터 현재까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이다. 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브레인 29명이 국가 미래를 연구하는 조직이다. 2009년 11월부터 안 교수는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대통령의 가치·세계관에 동조하지 않으면 동참하기 어려운 곳이다.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세력’과 같이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안 교수는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대통령과 정권이 변했다”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안 교수는 일단 ‘대통령 직속’에서 나온 후 칼을 던졌어야 한다.

 안 교수는 인터뷰에서 “나는 1970년대를 경험했는데 (집권세력이 그 시절로) 거꾸로 갈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70년대를 ‘돌아가서는 안 될 음지의 역사’ 같은 뉘앙스로 말한 것이다. 안 교수는 2005년부터 6년간 포스코(과거 포항제철) 사외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현재는 포스코가 만든 포스텍의 이사를 맡고 있다. 포항제철은 70년대 개발의 시대가 이룩한 대표적인 성취다. 그리고 70~80년대 권위주의 독재시절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해 정보산업의 기반을 닦아놓았다. 그런 길이 없었더라면 ‘안철수연구소’는 제대로 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안 교수는 70년대가 모아놓은 벌꿀로 보양하면서 70년대라는 벌집에 침을 뱉고 있다.

 그는 ‘표현의 자유’ 같은 부분이 거꾸로 간다며 이명박 정권을 독재인 양 묘사했다. 2008년 촛불 난동 때 초등학생들이 광장에서 대통령에게 XX라는 욕을 썼다. 9개월 전 제1야당 최고위원은 거리에서 “정권을 확 죽여버려야 한다”고 했다. 어느 민주당 의원은 선거유세에서 대통령 부인을 사기꾼이라고 매도했다. 이런 세상인데 안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제약 받고 있다고 한다.

 안 교수는 인터뷰에서 오세훈 전 시장과 서울시를 심하게 공격했다. “완전히 하드웨어에만 매몰돼서 남에게 보이는 사업만 해왔다. 교통 막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관심도 없다.” 그러면서 그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시스템을 주장했다.

 올해 서울시 예산 20조 2000억원에서 교통 분야는 2조7000억원으로 13.4%나 된다. 소프트웨어 교통시스템인 토피스(TOPIS)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노력으로 대중교통 이용률은 계속 늘고 있다. 2000년부터 천연가스버스 8700여 대가 보급돼 서울의 미세먼지는 4분의 1이나 줄었다. 공기가 맑아진 것이다.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예산인 복지 분야는 4조3000억원으로 21%가 넘는다. 그런데도 안철수는 오세훈을 ‘하드웨어에만 매몰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한국 최고의 과학도다. 그런데 그는 근거 없이 감정만으로 구름 위에서 마구 돌을 던져댔다. 이 대통령은 하산(下山)하는 권력이요 오세훈은 떠나버린 권력이다. 안철수는 그런 흔들리는 권력에는 매섭다. 그런데 진보·좌파의 더욱 심각한 잘못에는 침묵한다. 천안함·광우병·대운하·곽노현 같은 미망(迷妄)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인격에 바이러스가 집중적으로 침투할 때가 있다. 갑작스러운 인기에 빠져 면역력이 저하되면 더욱 그러하다. 안 교수는 거품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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