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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위기는 타산지석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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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호 30면

아일랜드와 그리스의 재정위기로 촉발된 유로존의 경제위기는 발생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유럽연합(EU) 차원의 공동 대응을 둘러싸고 회원국 간에 갑론을박이 이어지더니 급기야 최근에는 유로화 폐지론까지 흘러나오기에 이르렀다.

1999년 유럽 경제 통합의 상징으로 탄생한 유로화는 2002년 1월 1일을 기해 12개국 3억 명의 사람이 단일 화폐로 사용하면서 달러화에 버금가는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했다. 애초에 화폐 통합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비관론이 팽배한 가운데 출범한 EU 단일 화폐와 유럽중앙은행(ECB)이지만 초기 성적표는 괜찮았다. 저성장과 거시경제 불안에 시달리던 유럽의 물가를 안정시켰다. 환율 불확실성을 해소함으로써 역내 교역과 투자를 증가시키고 유럽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견인했다.

적어도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불어닥치기 전까지 유로화의 미래는 장밋빛으로 보였다. 그러나 금융위기에 직면한 회원국들이 제각기 자국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취약한 남유럽 국가들인 PIIGS(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의 재정적자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디폴트 우려와 구제금융의 부담으로 위기가 유로를 사용하는 모든 국가로 확산됐다.

사실 유럽 경제위기의 불씨는 금융위기 훨씬 전인 유로 탄생 시점에 잉태됐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화폐가치와 환율은 경제 상황을 알려주는 신호등이자 균형 성장을 가능하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무역수지가 흑자를 거듭하면 자국의 화폐가치가 상승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수출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나타난다. 반대로 경기가 침체되고 무역적자가 계속되면 환율이 하락해 수출 경쟁력이 커지는 식이다.

그러나 유로화처럼 역내 국가들을 극단적인 고정환율(단일 통화)로 묶어놓은 경우 환율은 개별 국가의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고 환율 조정에 따른 수출 증가, 경상수지 회복, 경제성장률 향상이라는 자율적 조정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문제가 터진 그리스와 이탈리아만 해도 그렇다. 경쟁력 회복을 위해 대폭적인 평가 절하와 금리 인상이 필요하지만 자국과는 무관한 유로화 강세 속에 통화정책의 결정권이 유럽중앙은행에 있어 마땅한 대처 방안을 찾기 어렵다.

해법을 찾기 힘든 이유는 또 있다. 무엇보다 사태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각국 정부의 입장이 제각각이다. 이탈리아 국채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프랑스는 유로존에서 가장 경제가 탄탄한 독일이 자금을 지원해 유로 전체로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독일은 문제가 된 나라들이 예산과 적자 규모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자칫 유로화의 몰락과 EU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의견 차이다. 앞선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로 체제에서 지속적 흑자를 만끽하고 있는 독일로서는 선뜻 유로를 포기하기도, 그렇다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지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EU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낮고 유로화 보유액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는 일단 사태 추이를 지켜볼 만한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유로의 붕괴는 자칫 글로벌 장기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점차 가속화되는 지역 경제 블록과 경제 통합 추세 속에 장차 아시아 경제권 창출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유로의 지난 10년간 성과와 최근 위기로부터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송기홍 1992년 프록터앤드갬블(P&G) 브랜드매니저, 96년 맥킨지 시카고오피스 컨설턴트로 일했다. 2007년 모니터그룹 아태 대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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