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안 좋은 작가를 강도로 그렸더니...미국 법원선 ‘무죄’ 판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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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호 08면

모네의 ‘인상:해돋이’

유명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지만 낙선한 몇몇 무명 화가가 모여 1874년 프랑스 파리에서 자기들끼리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를 본 기자는 그들의 작품 기법이 마치 아무렇게나 물감을 발라 놓은 듯하다고 조롱하며 그림들이 그저 벽지 같다고 혹평했다. 이처럼 미술계에서 부푼 꿈을 가지고 전시회를 여는 젊은 작가들이 비평가들의 독설에 의해 난도질 당하는 것은 조금도 새로운 게 아니다. 신진 작가뿐만 아니라 유명 갤러리도 종종 독설의 대상이 된다.

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27>그림과 명예훼손 소송

이처럼 억울하고 터무니없는 평가를 받으면 대개 화가 나거나 우울해지는데, 그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명예훼손 소송이다. 하지만 명예훼손 소송도 잘 따져 보고 해야 한다. 1982년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미술 비평란에서 “시내에서 열리고 있는 어느 미술전시회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이 아무렇게나 걸려 있다. 갤러리의 상식이 의심스럽다”는 내용의 혹평을 했다. 이에 화가 난 갤러리는 신문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신문사의 담당 기자가 전시회에 초대받아 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는 갤러리가 좋은 평뿐 아니라 나쁜 평도 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신문사에 무죄를 선고했다.

우리나라에서 민법상 불법행위가 되는 명예훼손이란 사람의 품성·명성·신용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해 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비평가의 논평도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가 저해된다고 할 수 없다. 비평가가 어떤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의 느낌을 말하는 순수한 비평이나 논평이라면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성립되지 않는다. 가령 “저 작가는 형편없다”는 비평은 단순히 의견이니까 문제가 없겠지만 “저 작가는 색맹이라서 저렇게 그린다”는 말에 대해서는 실제로 그 작가가 색맹이 아닐 경우 명예훼손죄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가가 그림을 통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수도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좋은 판례가 없지만 미국에는 몇 건의 판례가 있다. 1982년 미국의 한 법원은 어느 화가가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은 다른 작가들을 강도로 묘사한 그림에 대한 명예훼손 재판에서 작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그 그림에서 화가가 다른 작가들을 나쁘게 나타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작가들을 나쁘게 생각하는 화가 개인의 의견을 표시한 것으로 화가가 다른 작가들을 강도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라고 봤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 그림을 보고 다른 작가를 강도 용의자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보스턴 글로브 신문도 경쟁 신문의 편집장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했다. 상대방은 보스턴 글로브가 신문 만화에서 자신의 머리에서 뻐꾸기가 튀어나오는 모습으로 묘사해 마치 바보인 것처럼 조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신문사 편집장과 같은 공인에 대해서는 작가가 명백히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이상 그 공인을 동물에 비유하거나 하여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낮은 평가를 해도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실제로 그 만화를 본 사람 중 아무도 그 편집장 머리에 뻐꾸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유명한 사람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도 이기기 어려운 것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음란물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통제하지만 음란물이 아닌 사회적 또는 정치적 표현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것이 보통이다. 아마도 음란물보다는 혹독하거나 신랄한 비평이 정신적으로 덜 해롭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신랄한 혹평을 받고 정신적 충격을 받아 예술 활동을 아예 그만두는 젊은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법의 입장에서 보면 혹평은 그저 비평가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 사실이 아니다. 비평가들의 주장에 대해 법이 일일이 나서 표현을 통제하기보다는 작가가 그러한 평가를 잘 소화해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874년 자기들끼리 전시회를 열었던 그 화가들도 신문의 혹평과 비난 때문에 상당히 우울했지만 기가 죽지는 않았다. 이들은 바로 모네·르누아르·드가 등의 작가로 훗날 ‘인상파’라고 불리면서 한 시대를 멋지게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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