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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로 세계 흔드는 M&A 큰손 … 굴리는 돈 50조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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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호 28면

유대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 “유대인은 돈과 언론으로 세계를 지배 한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이 이재에 밝은 것은 사실이다. 중세 유럽 기독교 사회는 돈을 꾸어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죄악시했다. 그러나 나라 경제가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돈을 만지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 금융으로 불리는 돈놀이는 유대인 몫으로 돌아가게 됐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기업사냥꾼 헨리 크래비스 KKR 회장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대인 게토에서 환전상을 하던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18세기 말 그의 다섯 아들을 유럽 주요 도시로 보내 유럽 금융망을 구축했다. 이후 유대인 주도의 금융 체제는 전 세계로 확산됐다. 1913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태동 때도 로스차일드의 미국 대리인인 독일 태생 유대인 파울 바르부르크의 막후 역할이 컸다.

유대인들은 80년대까지 상업 금융에 주력했다. 이후 미국 금융계가 투자 금융으로 재편되자 유대인 고수들의 수완은 빛을 발했다. 특히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는 거의 유대인이 독점했다. 세계 제1위 사모펀드는 유대인 스테픈 슈워르츠가 회장으로 있는 블랙스톤이다. 2위인 KKR(Kohlberg-Kravis-Roberts)은 세 명의 유대인 ‘기업 사냥꾼’이 세운 인수합병(M&A) 전문 기업이다. KKR은 470억 달러(약 50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며 연평균 26 %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들 세 사람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헨리 크래비스(Henry Kravis·사진)다.

15억 달러로 315억 달러짜리 회사 인수
크래비스는 44년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69년 컬럼비아대에서 MBA 과정을 마친 그는 대형 투자회사인 베어스턴스에 입사했다. 이 회사는 불량채권 남발로 2007년 비우량 담보대출로 야기된 미국 금융 위기 때 도산했다. 크래비스는 베어스턴스에서 LBO(Leveraged Buy-Out·차입매수방식)의 대가인 제롬 콜버그를 만나 이 변종기법을 충실하게 전수받는다. LBO는 특별한 자본 없이 인수 대상기업의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만들어 기업을 인수한 다음 혁신적 경영기법으로 구조조정한 후 기업 운영을 궤도에 올려놓고 다시 고가로 매각하는 방식이다.

콜버그와 크래비스는 몇 건의 기발한 M&A로 베어스턴스사에 적지 않은 수익을 안겨주었지만 경영진과의 불화로 회사를 나온다. 76년 콜버그와 크래비스, 크래비스의 이종사촌인 변호사 조지 로버츠 등 세 명의 유대인은 각자 성의 첫 글자를 딴 KKR을 설립했다. 87년 콜버그는 고령으로 은퇴하고 크래비스가 대표회장직을 맡는다.

공격적이고 승부욕이 강한 크래비스는 유대인 마이클 밀켄이 개발한 ‘정크본드’를 응용·발전시킨다. 신용 등급이 낮은 여러 종류의 채권을 묶은 다음 이를 다시 잘게 썰어 위험 부담을 줄인 상품으로 재가공해 유통시킨 것이다. 크래비스는 부채로 기업을 인수하고 정크본드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LBO 방식으로 재미를 봤다. 특히 실적이 저조하고 저평가된 기업은 크래비스의 중점 공략대상이었다.

88년 크래비스는 대박을 친다. 당시로는 최대 규모의 M&A인 RJR나비스코사를 부채 포함, 315억 달러(약 33조5000억원)에 인수한다. KKR은 15억 달러(1조6000억원)만 조달하고 나머지는 모두 빚으로 충당했다. 나비스코는 담배·과자·통조림을 주력으로 1875년 설립된 전통 있는 기업이다. 크래비스는 정예 전문 경영진을 투입해 과감한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으로 부채를 상환해 가면서 기업 운영을 정상화시켰다. 다만 그는 경영엔 직접 참여하지 않고, 고용 승계도 일정 수준 보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KKR은 이어 병원그룹 HCA, 에너지기업 TXU, 건전지 제조사 듀라셀, 수퍼마켓 체인 세이프웨이, 완구업체 토이저러스, 영화관 체인 리걸 시네마 등을 속속 인수하면서 미국 M&A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OB맥주 인수하고 대우건설에도 눈독
KKR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2009년 5월 벨기에 AB인테브로사로부터 OB맥주를 인수했다. 같은 해 대우건설 인수에도 관심을 갖고 한동안 기웃거렸다. 2010년 10월엔 우리 국민연금공단과 파트너십을 맺고 오일 메이저 셰브론이 보유한 콜로니얼 파이프라인 지분 23 %에 대한 공단의 투자를 성사시켰다.

크래비스의 사업 방식에 대해선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자본 없이 기업을 인수해 자본시장을 지배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다. 그리고 KKR이 정부와 공공기관의 각종 연기금을 위탁받아 정치 권력과 유착하면서 자금 조달력과 공신력을 높이는데 대해서도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크래비스는 많은 유대인 부호처럼 자선과 기부에 열정을 쏟는다. 특히 청년층 직업교육 훈련과 차세대 지도자 육성사업에 큰돈을 낸다. 학교·병원·장애인 시설 확충에도 기부금을 쾌척한다.

국제사회에서 크래비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는 국제무대 거물인 데이비드 록펠러나 헨리 키신저와 특히 가깝다. 또한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민간기구에 모두 참여하는 몇 안 되는 명사 중 한 명이다. 크래비스는 유럽과 북미지역 원로급 지도자들의 은밀한 모임인 빌더버그 그룹 회의에 고정 참석한다. 미국외교평의회(CFR) 이사이면서 북미·유럽·아시아 3대륙 주요 인사의 회합인 삼변회(TC) 회원이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도 매년 얼굴을 내민다. 이들 기구는 오늘날 주요 국제정세를 정밀 판독하고 아울러 새로운 세계질서도 설계하는 핵심 국제엘리트의 결사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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