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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민심잡기 3탄 ‘비정규직 대책’ … 결국 기업이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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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과 정부가 추석 민심을 잡기 위한 대규모 친서민 정책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9일 정부와 한나라당이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소득세·법인세 추가 감세(減稅) 철회와 대학 등록금 부담 완화 조치에 이은 ‘추석 민심 잡기 시리즈’의 제3탄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정부가 비정규직 차별 개선 비용을 대부분 기업에 전가하고 법적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만 열거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번 종합대책의 초점은 비정규직의 사회안전망 강화와 임금격차 해소에 맞춰져 있다. 1700만 명의 경제활동 인구 중 절반에 육박하는 비정규직(830만여 명)의 소득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사회통합이나 내수 경기 활성화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이에 따라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저소득 근로자에게 국민연금과 고용보험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가 직접 예산 2500억원을 풀어 1인당 보험료의 3분의 1인 25만원씩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3명에 1명꼴로 이 지원을 받게 된다.

 정부의 기대대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국민연금·고용보험에 가입할지는 불확실하다. 실례로 정부는 지난해부터 골프장 캐디·학습지 교사 등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39만여 명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했다. 하지만 이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8월 말 현재 8.5%(3만3000여 명)에 그치고 있다. 한 달에 130만원을 버는 비정규직에게 25만원씩이나 내야 하는 보험료가 버거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금 격차 해소 방안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정부와 여당은 당초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 선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기업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반대에 부닥쳐 명확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 대신 기업에 정규직에게 지급하는 복리후생과 상여금 등을 비정규직에게도 일괄 적용하라고 권고했다. 또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임금체불을 원청기업이 연대책임지고 불법파견자가 확인되면 정규직으로 고용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원청기업과 하도급회사는 별개 회사”라며 “사내하도급 근로자는 하도급업체의 정규직 근로자인데 원청업체가 책임지라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또 불법 파견의 의무 고용은 지금도 불법으로 파견 근로자를 쓰는 사업주는 3000만원의 과태료 처벌을 받고 있어서 추가로 규제를 강화한 것이란 반응도 나온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먼저 채용 실태를 조사한 뒤 별도의 방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최삼태 대변인은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라며 “비정규직 대책을 추석을 앞두고 서둘러 발표하느라 핵심이 빠진 립서비스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증가는 기업과 기존 노조의 이해가 맞물린 결과다. 기업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임금 부담을 덜기 위해 비정규직을 남용했다. 기존 노조는 조합원의 일자리 지키기에 몰두해 고용시장을 경직시켰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결국 대기업 노사의 양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특히 대기업 노조가 임금이나 복지 등을 동결하고 인상분을 비정규직에게 양보하는 식의 타협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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