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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교 폐교 아틀리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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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업실이 프랑스에 있다면 아마도 피카소나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대구 기차역에서 자동차로 약 40분을 달려 도착한 청도군 대산초등학교. 폐교가 된 이곳을 지난해부터 화가들이 아틀리에로 사용하고 있다.

10여년간 파리에서 활동하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귀국한 이영배(44)씨의 농 섞인 자랑이다. "교실뿐 아니라 운동장까지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여유있습니까. 소음·매연도 없고요. "

대구가 고향인 그는 '올해의 작가' 전을 준비하기 위해 입주했다.

20평 남짓한 교실이 아홉 칸. 이곳에 이씨를 비롯해 최병소·남춘모·김선혜·김동철씨 등 다섯 명의 화가가 둥지를 틀었다.

복도에는 작품이 가득 쌓여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신발장이나 사물함은 훌륭한 작업대가 된다. 책·걸상을 쓰는 것은 기본이다.

"여름엔 모기, 겨울엔 추위와 싸우죠. 시설은 보잘 것 없지만 비싼 임대료 내면서 시내에서 부대끼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 남춘모(39)씨의 설명이다.

군 교육청에 납부하는 임대료는 월 6만~10만원선. 시내에 비하면 3분의1 수준이다.

폐교를 활용한 작업실은 대구 주변에 모두 여섯 군데.

이중 '박달예술인촌'이라는 간판을 내건 달성군 달천초등학교에는 대구지역의 미술대학 교수 10여명이 모여있다.

촌장을 맡은 계명대 배인호 교수가 폐교 작업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들을 모집해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시내와 가까워 학교와 작업실을 오가는데 편리하다. 때문에 입주 당시 경쟁률이 치열했다는 후문이다.

회화·조각·공예·디자인 등 여러 분야가 섞여 있어 다른 폐교 작업장과 차이가 난다. 교수나 교사가 많기 때문에 수업을 위해 들락날락하느라 구성원들끼리 서로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

시설이 좋기로는 달성군 유산초등학교가 꼽힌다. 원래 폐교 자리에 교회가 들어서려다 무산되면서 개조한 시설이 고스란히 작가들에게 돌아갔다. 욕실·세면대는 물론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는 방까지 있다.

유산초등학교 유치원 건물을 쓰는 김기운(40)씨는 "학교 교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이 정도 시설이면 경제적 여건이 넉넉지 않은 작가들에겐 호텔급"이라고 말한다.

폐교에서 작업하는 것이 단순한 장소 제공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작가 지원으로 이어지는 것, 자신들의 작업이 지역과의 연결점을 찾았으면 하는 것 등이 작가들의 바람이다.

"지방자치체와 공동으로 이 지역의 문화상품으로 키울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습니다. 가령 청도군의 명물인 소싸움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거든요. 지역성과 연결될 수 있는 미술 작업을 하고 싶어요. "(이영배)

"정기적으로 창작 성과를 발표하고 시 차원에서 작품을 사준다든가 하면 어떨까요. "(김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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