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수술에 쓰이는 칼을 공급하는 일본 기업이 보건복지부의 정책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정부와 병원, 환자는 일본 기업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됐다. 초기 위암 때 암세포를 내시경과 수술칼로 잘라내는 '내시경적 점막하 박리절제술(ESD)'에 쓰이는 시술용 칼을 공급하는 올림푸스 얘기다.
보건복지부는 이달부터 ESD의 보험 적용 기준을 '2㎝ 이하 위암'으로 한정하고 시술비를 약 50만원으로 책정했다. 그러자 그동안 250만원 정도를 받았던 병원들이 '칼 값도 안 나온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급기야 시술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보건복지부는 의료업계와 재협상에 나서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엉뚱하게 시술에 반드시 필요한 수술용 칼을 파는 올림푸스가 칼자루를 쥐고 이득을 챙기는 상황이 연출됐다. 실제로 올림푸스는 보건복지부가 의료업계와 재협상에 나서자 "공급가격을 올려달라"며 칼 공급을 중단했다. 칼이 없으면 수술을 할 수 없으니 보건복지부나 병원도 올림푸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ESD는 내시경과 칼을 이용해 암 부위를 절개해 도려내는 시술법이다. ESD 수술용 칼은 일회용이다. 국내에서 개당 약 4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한해 6000여 개 팔린다. 전체 시장의 60~70%정도를 올림푸스가 차지해 사실상 독과점적 위치에 있다.
당초 올림푸스는 관세청에 수입원가를 13만원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9만4950원으로 가격을 확 낮춰 책정했다. 가격 책정을 담당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수입원가가 13만원인데 판매가가 40만원이라면 말이 되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림푸스가 판매하는 6 종류의 칼 가운데 두 번째로 잘 팔리는 칼의 원가가 5만원 정도다. 이를 기준으로 원가의 1.78배인 9만4950원으로 공급가를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올림푸스는 공급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며 반발했다. 급기야 올림푸스는 지난달 30일 병원에 '수술용 칼 공급 불가' 공문을 보내고 판매를 중단했다. 올림푸스 관계자는 "판매 금액은 마케팅과 R&D 비용 등이 포함된 금액인데, 원가 기준으로만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문제"라며 "일본과 대만에 비해 한국은 싼 편"이라고 말했다.
올림푸스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40만원에 팔고 있지만 일본에선 이보다 5만~12만원 비싼 가격에 판다. 대만에서는 54만원을 받는다.
보건복지부는 올림푸스가 칼 공급을 중단하자 결국 무릎을 꿇었다. 당초 책정한 가격을 파기하고 24만원까지 올려줄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료기기에 대해 통상 원가의 178%를 가산해주는 판매가 산정 원칙을 적용, 24만원까지는 올릴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림푸스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올림푸스 관계자는 "오늘 중으로 보건복지부에 가격 재조정안을 제출할 것"이라며 "기존 40만원보다는 내리는 쪽으로 결론이 날 것 같다"고 전했다. 또 "가격 폭리를 취하기 위해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공급업체로서 병원과 보건복지부 사이에 껴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병원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서는 "가격을 정하는 것은 보건복지부와의 일"이라며 "(환자의 건강이라는) 도의적인 책임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조속히 재조정하겠다"고 전했다.
올림푸스 또 다른 관계자는 "병원에 ESD 시술용 칼 재고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의사(병원)들이 올림푸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