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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해피 톡톡] 그들도 우리처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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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그 녀석이 저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피할 방법은 없는듯 했습니다. 뒷모습을 보이는 건 더 위험합니다. 아, 저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합니다. “엄마야, 나 어떡해!” 소리를 지르는 순간, “괜찮아요, 괜찮아. 이 개가 얼마나 순한데.” 때마침 나타난 농장 주인 아주머니가 구세주처럼 느껴졌습니다. 녀석은 꼬리를 흔들며 쪼르륵 주인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지난달 원주의 한 비닐하우스 농장에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전 개를 무서워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까칠한 혓바닥이 제 살갗에 닿을 때의 느낌이 싫습니다. 어릴 적 개를 피해 도망가다가 물릴 뻔한 뒤로 개 기피증이 더 굳어졌습니다. 아무리 작고 예쁜 강아지라도, 절 핥을까봐 멀찌감치 구경만 합니다. 좁은 승강기에 개를 데리고 타는 분들이 가장 큰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두 아이가 “우리도 강아지를 키우자”고 난리입니다. 엄마가 개를 무서워한다는 건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논리적인 설득작업에 나섰습니다.

“첫째, 개를 키우는 일은 품도 많이 들고, 돈도 많이 든다. 누가 씻기고, 변을 치울 것이냐. 지금은 너희가 다 하겠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엄마 몫이 될 거다. 또 너희보다 개 병원비가 더 들 텐데, 차라리 불우이웃을 더 돕자.”

“둘째, 아파트라는 공간은 개를 키우기에 적절치 않다. 너희도 틈만 나면 나가서 놀고 싶어하지 않느냐. 엄마는 개의 본성을 죽이고 좁은 공간에 가둬두는 것 같아 개한테 미안하다.”

“셋째, 여행갈 때 어떻게 할 것이냐. 매번 동물병원에 맡길 거냐. 교통이나 숙소 문제 때문에 데리고 다닐 수도 없다. 일단 키우기로 했으면 개한테도 책임감 있는 가족이 돼 줘야 한다. “

제 진심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좀 잠잠해졌습니다.

이번 호의 ‘견공과 마공’ 기획은 제가 제안했습니다. 개를 무서워하지,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또 몇 년 전 훈련된 개들을 이용해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의 치료를 돕는 프로그램에 대해 취재한 뒤로 ‘반려동물’의 가치를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마침 한 TV 오락프로그램을 통해 안내견이 되기 전후의 개들 이야기가 알려졌습니다. 지하철에서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을 이해하지 못해 일어난 소동도 한동안 인터넷을 달궜습니다. 이들에 대해 함께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기자들이 취재해온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사람보다 더 사람을 돕고 위로해주는 반려동물들. 사실 그렇게 하기 위해 스스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겁니다. 사람들과 ‘동행’해주는 그들이 고마웠고, 그런 그들을 묵묵히 돌봐주는 사람들이 고마웠습니다.

은근히 걱정도 됩니다. 제 아이들이 기사를 보고 또다시 졸라댈까봐 말입니다. 이예지 기자의 취재 뒷이야기가 좀 도움이 될까요?

“전 워낙 개를 좋아해서 이번에 취재하고 나면 더 키우고 싶어질 줄 알았어요. 나중에 결혼하면 퍼피워킹 봉사도 신청해야지,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은퇴견을 키우고 퍼피워킹 하는 집을 가보니, 마음만으로 될 일이 아니더라고요. 늙고 병들어가는 개를 돌보는 거나,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개를 매일 훈련 시키는 거나 …. 웬만한 책임감 가지고는 못할 것 같아요.”

책임감 있는 사랑.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동행’의 시작이 아닐까요.

김정수 행복동행 에디터, 경원대 세살마을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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