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애국가 부르는 일본 관광청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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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한범수
(사)한국관광학회 회장

HP가 과감하게 하드웨어 생산 중단을 선언하고 소프트웨어에 올인하겠다고 하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관련 업계가 공동으로 참여해 한국형 운영체제(OS)를 만들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업계는 이런 대응을 마냥 곱게만 바라보고 있지 않다. 애플이 자체 OS를 론칭하는 데 10년이 걸렸고 삼성이 OS 바다를 실용화시키는 데 5년이 걸렸는데 인프라가 부족한 현재 상황을 감안할 때 전시행정이라는 것이다.

 뜬금없이 관광학자가 정보기술(IT) 얘기를 왜 하는가 하고 의아해할 수 있다. 논지의 핵심은 ‘지속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으면 어느 분야든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대지진의 영향으로 외국인 관광객 수가 급감하자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관광청 장관은 우리나라 애국가를 부르면서 관광 관련 인사들의 마음을 사려고 애쓰고 있고, 요코하마 시장은 방일 사절단을 맞이하면서 시청의 공무원 수백 명을 현관에서 회의장까지 도열시키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왜 그럴까. 관광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열을 올리고 있을까. 도덕국가로 일컬어지던 싱가포르가 카지노를 왜 허용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관광은 내국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관광객의 발길이 뚝 멈춘 일본, 싱가포르를 상상해보자. 그 순간 그 국가의 대내외 경쟁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관광, 그 관광이 물동량의 이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한국관광공사의 공익광고 중에 “이 소리가 들리십니까?”라는 광고가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 한 명이 방문하면 컬러 TV와 자동차 몇 대를 수출한 효과와 같다고 한 광고다. 이 광고는 관광산업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2000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2002 한·일 월드컵 개최 후 관광산업에 대한 관심이 소강상태를 보이다, 2010년 주요20개국(G20) 회의가 개최되면서 관광산업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얼마 전 2018년 겨울올림픽을 유치하는 쾌거가 있었다. 또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는 세계의 건각들이 몰려들었다.

 정부에서 예산을 감축할 때는 국제행사 관련 예산이 가장 먼저 대상이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관광 관련 예산을 증가시키고자 하는 관련 부처의 노력은 가위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관광산업은 시절이 좋으면 하고, 시절이 나쁘면 포기하는 그런 산업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관광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으면 국가 간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고, 그 영향은 우리나라 산업 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문화와 문화가 교류되는 접점에 관광산업이 있기 때문이다.

 10월에 세계 154개국 관광장관과 대표단, 관광 관련 기구, 협회 전문가, 학계·업계 등 1000여 명이 참석하는 세계인의 관광올림픽인 19차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총회가 경주에서 열린다. 정부는 행사 기간 중 총회 개최지인 대한민국 경주를 ‘지속가능한 관광’의 세계적 모델로 제시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 국민은 얼마나 될까.

평소에 준비하지 않으면, 마치 IT산업이 지각변동에 허둥대는 것처럼 관광산업도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해외관광객 1000만 명 시대가 열리고, 세계 관광산업의 리더들이 한국에 모이는 올해를 대한민국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한층 더 높이고 관광인프라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전환기로 만들기 위해 국민, 정부, 관련 업계의 관심이 더욱 커지길 기대한다.

한범수 (사)한국관광학회 회장(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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