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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세종대 SW…빌 게이츠 극찬했고 한국은 사장시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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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를 순회하며 매년 열리는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경진대회 이매진컵(Imagine cup). 2007년 서울대회에선 정지현(당시 나이 22)·임병수(24)·임찬규(27)·민경훈(27)씨로 구성된 세종대 동아리 ‘엔샵605’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정보기술 영재들이 모이는 이 대회에서의 첫 한국팀 수상이었다. 출품작은 ‘핑거코드’. 진동을 통해 시청각장애인의 소통을 돕는 기술이다. 대회를 주최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판타스틱(환상적)”을 연발하며 극찬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수상자들을 미국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절대 사장(死藏)시키지 마라(Please, don’t die). 여러분의 아이디어는 꼭 살아남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3명은 취업했고 한 명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다. 투자받기 위해 그동안 백방으로 뛰었지만 허사였다. 정부가 관심을 보이긴 했으나 잠깐뿐이었다.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외려 “아이디어를 무상으로 주면 안 되겠나”란 말까지 들었다. 임찬규씨는 “외국은 정부 차원에서 투자를 해 사업을 이끌어내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다”고 아쉬워했다. 빌 게이츠를 놀라게 했던 한국 청년들의 기술은 그렇게 묻혀버렸다.

 KAIST 벤처창업동아리 ‘KB클럽’ 출신 A씨는 2001년 34세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기술벤처를 창업한 뒤 정부가 주는 우수기업상을 휩쓸며 승승장구했지만 자금 압박은 견딜 수 없었다. KB클럽 1기 회장을 지낸 그의 동료 김도완(42)씨는 “창업은 내겐 아픈 과거”라며 A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김씨 역시 창업을 포기하고 지방에서 입시전문 강사로 일한다.

 본지는 김씨를 포함한 창업 선구자들을 추적했다.

투자 거부한 정부 “아이디어 공짜로 주면 안 되겠나”

벤처 열풍이 불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 벤처동아리가 가장 활발했던 대학은 KAIST·서울대·숭실대·광운대. 이들 4개 대학 초창기(1~3기) 동아리 멤버 150명 중 벤처창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고작 13명이다. 나머지는 연락이 끊겼거나 취업했다. 일부는 의사·교수 같은 전문직을 택했고 A씨처럼 스스로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이들은 청년 창업의 가장 큰 애로점으로 돈 문제를 꼽았다. 특히 에인절투자자 부족을 아쉬워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 벤처에 투자된 신규투자액은 5493억원. 2009년엔 346억원까지 떨어졌다. 한번 실패하면 매장당하는 국내 현실을 질타하는 지적도 나왔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천재도 열 개 아이디어 중 한 개만 성공시키는데, 우리는 천재 한 명이 아이디어 하나 냈다가 실패하면 매장당한다 ” 고 꼬집었다.

특별취재팀=김기환·심서현·채승기 기자, 권재준(한국외대 법학과)·김승환(고려대 경영학과)·최나빈(고려대 노어노문학과) 인턴기자

◆에인절투자자=기술력은 있으나 자금이 부족한 창업 초기 기업에 자금을 대고 경영을 지도해주는 개인투자자. 자금에 목마른 벤처기업에게 갑작스럽게 나타나 돈을 대준다고 해서 ‘천사(Angel)’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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