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국민 성희롱 주역’ 김형오·황우여·김진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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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욱
정치부문 기자

박희태 국회의장은 지난달 31일 오후 3시쯤 본회의장을 거대한 ‘밀실’로 만들어 놓고 여대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무소속 강용석 의원 제명안을 처리했다. 본회의장에 빗장을 굳게 쳐놓은 채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강 의원 변호에 열을 올렸고, 한나라당이 앞장서 강 의원 제명안을 부결시켰다. 거추장스러운 기자들과 방청객들을 내보냈으니 마음 놓고 할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다. 그래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정확히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오산이었다.

 본회의장 안에서 벌어진 일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 민노당 이정희 대표 등이 거의 실시간으로 트위터를 통해 중계하고 있었다. 김 전 의장의 ‘강용석 변론’ 등은 그렇게 해서 외부에 자세히 알려졌고, 트위터리안들은 이 사건을 ‘국회가 국민을 성희롱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강용석 구출작전’의 주역들은 1일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한나라당 원내사령탑인 황우여 원내대표는 당 회의에서 자화자찬(自畵自讚)만 잔뜩 했다. “8월 국회에선 민생현안 관련 대책에 한발 한발 진전이 있었다”거나 “법 안 지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걸 고쳤다” 등이다. 강 의원 제명안에 대한 한마디의 사과나 유감표명도 없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출입기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인터넷에 제 이름 석자 치기가 두렵다. (내) 블로그의 방명록이나 게시판에 저를 향해 날아온 돌로 수북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숲은 없고 나무만, 곁가지만, 잎사귀만 달랑 보고 있다. (내 발언의) 본질은 실종됐다”면서 언론 탓만 했다. 강 의원을 제명하지 말자는 그의 여러 수사(修辭)들이 ‘곁가지’나 ‘잎사귀’였을까.

 민주당도 떳떳한 상황은 아니다. 소속 의원이 ‘트위터 생중계’로 한나라당을 난감한 처지에 몰았다고 민주당이 제1야당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순 없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가 동의해 주지 않았다면 한나라당은 ‘밀실투표’를 강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 원내대표도 1일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황 원내대표처럼 강 의원 제명안 부결에 대해 함구했다. 평소 같으면 요란하게 한나라당을 나무랐을 텐데 말이다. 강 의원 제명안 부결은 결국 여당이 앞장서고 야당이 방관해 ‘동업자 카르텔’을 완성해 이룬 사건이다.

남궁욱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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