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피아노치는 …' 출간 박지영 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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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조금 돌아돌아 살아 왔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을 많이 절약했다. 남들 사법시험 준비하여 변호사 자격증 하나 딸 시간에, 다른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145쪽)

19세 꽃다운 나이이던 재수 시절, 완치율 50%에 불과한 임파선암과 씨름하며 하루 10시간씩 구토를 했던 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박지영(35) 변호사는 최근 자신의 곡절 많은 삶을, 그러나 감사하게 담은 '피아노 치는 변호사, Next'(땅에 쓰신 글씨, 263쪽, 1만원)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장안의 내로라는 집안의 자녀들이 다닌다는 서울 예원중, 서울예고를 나와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다시 서울대 법대를 마치고 결국 원하던 변호사가 되었다. '한국에서 피아노를 가장 잘 치는 변호사'로 제법 이름을 알리기도 했고 지금은 법무법인에서 하루 48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분주한 '잘 나가는' 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의 성공담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두 가구가 한 아파트에 살면서 피아노 연습을 하던 이야기, 앞만 보고 달린 중고교 시절, 15년 동안 쳐 온 피아노를 포기하던 심정, 재수 시절이며 독학으로 사법시험 1차에 붙은 승리자의 공부방법 등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찬찬히 읽으면 무엇보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요, 앞으로 남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임을 알 수 있다. 암 투병 경험이 큰 계기가 된 듯했다.

그가 음대 졸업 후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버지께 조금만 기다려주십사고, 자기가 이웃의 기쁨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기대해 달라고 편지를 썼던 것도 이런 마음이 바탕이 됐다.

"지금 제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보다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 뭘 하느냐가 중요하지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한시(限時)적이란 생각을 하는 그는 뜻이 맞는 '한시미션'이란 단체에서 몇 년째 봉사활동 중이다. 장애인 인권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35만 암투병 환자들이 제 글을 읽고 저처럼 건강한 사람들과 똑같이 활동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으면 싶어요"

눈부시진 않게 그러나 뚜벅뚜벅 제 갈 길을 찾아 걷는 그가 믿음직스러웠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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