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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베두인 천막’산다더니 … 카다피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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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카다피의 셋째 아들 사디의 호화 별장에서 취재 중인 이상언 특파원. 최고급 집기들로 꾸며진 이 별장에서는 다량의 고급 브랜드 옷과 모터보트·제트 스키 등의 레저용품이 발견됐다.

그는 늘 리비아 국민을 “사랑하는 형제들”이라고 불렀다. 해외에 머물 때에는 유목 민족 베두인의 전통이라며 특급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을 마다하고 공원에 천막을 치고 지냈다. 총통이나 대통령 같은 화려한 직함도 고사했다. “모두가 공평히 잘사는 지상 최고의 복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는 42년 동안 리비아를 통치해온 무아마르 카다피다. 이제는 어느 지하 벙커에서 숨죽이고 있거나 아프리카의 다른 독재자의 울타리 속에 숨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한때는 국민의 추앙을 받는 것처럼 여겨졌던 인물이다. 리비아 국민은 지금 그를 향한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다. 황급히 도주하며 고스란히 남겨 놓은 그와 가족들의 흔적들을 하나씩 찾아낼 때마다 분노는 증폭된다. 어쩌면 그것은 자국민을 향해 총알과 폭탄을 날렸던 지난 6개월의 내전 때보다 더 큰 증오감일 수도 있다.

 그가 은신처로 삼아 온 수도 트리폴리의 요새 ‘바브 알아지지야’ 내부의 관저는 이탈리아제 가구들과 최고급 양모 카펫으로 가득 차 있었다(며칠 새 화난 시민들이 모두 뜯어가 버려 지금은 흔적도 없다). 독일제 방탄 차량도 그 앞에 있었다. 유리창에 수십 발의 총탄 자국이 보였지만 창은 깨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도 못 미더웠는지 차창은 안쪽에 방탄 유리가 한 장 더 있는 이중 구조였다. 요새 인근의 공항에는 그의 호화 전용기가 버려져 있다. 그 안의 킹 사이즈 침대는 화려하게 수놓은 침구로 덮여 있었다.

 그의 자녀들은 한 술 더 떴다. 그는 7남1녀, 8명의 생물학적 자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양한 딸들도 있는데, 누구는 둘이라 하고 누구는 넷이라 한다.

 트리폴리 시내에서 발견된 그의 셋째 아들 사디의 집에서는 이탈리아산 최고가 스포츠카인 람보르기니를 비롯해 여러 대의 승용차가 나란히 주차돼 있었다. 딸 아이샤의 집은 수영장까지 딸려 있는 저택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본떠 만든 황금인어상으로 장식된 소파 옆에는 최고급 프랑스산 샴페인 돔 페리뇽 병이 뒹굴고 있었다. 바람둥이로 소문났던 넷째 아들 무타심은 도주 직전까지도 네덜란드 출신의 플레이보이지 모델 경력이 있는 여성과 밀애를 즐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녀들의 집에는 공통적으로 고가의 홈시어터 설비와 할리우드 영화 DVD 타이틀이 있었다. 카다피는 1994년 ‘사회정화법’이라는 새 법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서방의 영화나 노래를 보거나 듣지 못하게 하는 조항도 있다. 이슬람 전통을 지킨다는 취지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면서 자신들은 모든 것을 즐겨온 것이다.

 카다피와 자녀들이 초특급 럭셔리 생활을 누려온 것은 ‘오일 머니’ 덕분이다. 응당 그것은 국가와 국민의 것이다. 이웃 튀니지 국경에서 트리폴리로 들어오는 약 300㎞의 길에는 피폐한 삶에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남루한 옷차림의 리비아인들이 즐비했다.

한편 알제리 관영 APS통신은 29일 외무부 공식발표를 인용해 "카다피의 부인 사피아와 딸 아이샤, 아들 한니발과 무함마드 그리고 이들의 자녀들이 이날 오전 알제리에 입국했다”고 전했다.

트리폴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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