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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환경 변화 … 신뢰감 상처 아물기 위해 시간 필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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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호 20면

올해 8월은 폭우와 산사태가 있었던 달로 많은 이에게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주식시장에 있어서도 정말 잔인한 한 달이었다. 여름휴가철을 앞둔 강세장을 뜻하는 ‘서머랠리’와는 거리가 먼 여름이었다. 이번 급락 장세가 외부 충격에 기인했다고 하더라도 금융의 본질은 고객을 위한 봉사다. 전문 지식의 나눔을 통해 고객의 재산 증식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급락은 자산운용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큰 자괴감을 느끼게 한 길고 긴 한 달이었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이번처럼 짧은 기간 주가가 급하게 떨어진 경우는 필자의 경험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IMF 경제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제외한다면 가장 짧은 기간에 시장이 패닉에 빠졌었다. 코스피지수는 1일 2172에서 9일 1684로 하락할 때까지 단 7영업일 만에 50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이후에도 주가의 변동성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증시를 맴돌았다. 이제 월말이 돼서야 과도한 패닉의 그림자가 좀 거둬지는 듯하다. 그러나 2000 선이 너무 멀게 느껴질 만큼 시장은 한 단계 떨어졌다. 패닉의 파편들은 곳곳에서 생채기를 남겼다.

단기적으로는 패닉 상태가 진정되면서 기술적 반등이 전개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증시의 과도한 하락이 되돌려질 것이라는 확신도 분명하다. 사실 한국 증시는 수급 쏠림의 후유증이 있을 뿐이지 선진국과 같은 시스템 리스크가 없다. 그런데 선진국 증시가 10% 내외 하락할 때 한국 증시는 20% 이상 과다하게 떨어졌다.

단기 반등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운용 경험상 이 같은 시장의 급락은 증시의 환경이 변화됐고, 향후 기존의 틀과는 다른 형태로 패러다임이 나타날 것임을 예고하는 시장의 메시지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시장의 경고를 정확하게 해석해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게 펀드매니저의 중요한 숙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패러다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선 세계경제 성장에 대한 낙관론에 금이 갔다. 글로벌 시장을 이끌 정치적 리더십이 없을 때 세계 경제가 얼마나 불안한 유리판 위에 서 있는지를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특히 선진국 경제가 고성장 국면으로의 빠른 회복보다는 새로운 표준을 의미하는 뉴노멀(New Normal)의 저성장 환경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측면에서 눈높이를 분명 한 단계 낮춰야 한다. 그리고 성장의 주도권은 선진국이 아닌, 중국을 위시한 이머징 국가가 가져갈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는 대응이 필요한 듯하다.

둘째는 가계·국가·기업 등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는 주체별로 보자. 전 세계적으로 가계와 국가는 유동성 함몰의 위험에 빠져 있다. 하지만 기업만은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상태다. 이제 기업들 중심의 성장과 투자 동력으로 전체적인 환경이 바뀌어 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가 큰 산업 내의 기업 중심으로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국가별로 고용효과가 큰 산업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서비스업의 활발한 움직임, 그중에서도 정보기술(IT) 분야의 서비스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연계해 제조업 중심 패러다임의 한계에 대한 인식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 자동차·화학·정유라는 경쟁력이 탁월한 한국의 대형 제조업 주식은 짧은 순간에 산사태 같은 가격의 급변동을 경험했다. 더불어 IT 대형 제조업들의 주가는 줄곧 하락세를 나타내다 그 하락세가 더 가속화됐다. 한국 제조업 경쟁력이 탁월하다는 것에만 심취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제 구조적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장기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8월에 주식시장이 지나친 패닉성 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여타 어떠한 주식시장보다 한국시장이 과도하게 하락했던 부분도 곧 정상화될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과거 금융위기 때와 가장 확연하게 다른 점은 한국의 펀더멘털이 구조적으로 개선돼 있다는 것이다. 또 과잉 부채 문제가 기업이나 한국의 정부 차원에서는 전혀 걱정거리가 아니라는 점도 다르다. 그리고 이 점 때문에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주식시장이 22.5% 이상 급락했음에도 3.3% 정도의 절하밖에 나타나지 않았던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고성장을 기대하던 눈높이는 낮춰져야 한다. 향후 미국과 유럽의 리더십이 회복되더라도 이미 한 번 무너졌던 신뢰감의 상처가 아물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시장 변동성이 심해지는 상황은 불가피할 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이제 힘들게 자산을 지켜 나가고 벌어야 한다. 



서재형(47) 2004~2008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주식운용본부장을 지냈다. 지난해 말 김영익 전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과 자문사를 설립해 한 달도 안 돼 1조원이 넘는 돈을 모았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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