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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마라톤, 동료애가 만든 키플라갓의 첫 금메달

중앙일보

입력

에드나 키플라갓(32·케냐)은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후 무릎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뒤돌아섰다. 그의 동료가 달려오고 있었다. 키플라갓은 수 초 뒤 프리스카 젭투(27·케냐)와 샤론 체로프(27·케냐)가 차례로 들어오자 껴안고 기쁨을 나눴다. 키플라갓의 승리이자 케냐의 승리였다.

키플라갓이 27일 막을 올린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키플라갓은 오전 9시 시작한 여자 마라톤 결승에서 2시간28분43초의 기록으로 월계관을 썼다.

동료애가 만든 감동적인 금메달이었다. 키플라갓은 35㎞ 지점부터 스퍼트하며 젭투와 체로프를 몇 걸음 차로 따돌리고 선두를 질주했다. 발걸음은 경쾌했다. 그의 자세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러나 키플라갓은 급수대에서 물병을 집다 뒤따라오던 체로프의 다리에 걸려 무릎을 땅에 찧는 위기를 맞았다. 위기에서 그를 구한 건 경쟁자이기도 한 동료였다. 체로프는 레이스를 잠시 멈추고 키플라갓을 일으켜줬다. 젭투 역시 속도를 늦췄다. 그리고 함께 달렸다.

불의의 사고는 키플라갓을 멈추지 못했다. 키플라갓은 둘에게 "고맙다"는 손짓을 한 뒤 다시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결국 두 번째 스퍼트로 동료 둘을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세계선수권대회 첫 금메달이었다.

케냐에서 경찰로 일하고 있는 키플라갓은 대기만성형 마라토너다. 3000m와 5000m와 1만m 선수로 뛰다 31살의 늦은 나이인 지난해 마라톤으로 전향해 잠재력을 꽃피웠다. 2010년 미국 LA 마라톤대회와 뉴욕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해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 4월 런던마라톤에선 올 시즌 세계 랭킹 3위 기록인 2시간20분46초를 기록해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케냐는 젭투가 2시간29분00초로 2위, 체로프가 2시간29분14초로 3위에 올라 단체전(번외 경기)에서도 우승했다.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을 통틀어 한 국가가 마라톤 금·은·동메달을 싹쓸이한 건 처음이다. 세 선수는 레이스가 끝난 뒤 케냐 국기를 등에 두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정윤희(28)·최보라(20)·박정숙(31)·김성은(22)·이숙정(20)이 나선 한국은 김성은이 2시간37분05초로 55명 출전 선수 중 29위에 그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메달을 노렸던 단체전에서도 7시간59분56초의 기록으로 7위에 머물렀다.

대구=김우철 기자 [beneat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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