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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몽골 - 투르크 벨트까지 넓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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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갈기가 돋은 말 위에 앉아 깃발을 휘날리며 내달리는 기마병, 철갑을 뒤집어쓴 말을 타고 긴 창으로 상대방을 찌르는 갑주병의 기마전투, 달리는 말 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마사희(馬事戱), 말이 끄는 수레에 앉아 위엄을 부리는 귀족들의 수레행렬.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숨 막히는 장면들이다. 고분에만 갇혀 있던 이런 명화가 카자흐스탄은 물론이고 몽골 일대의 열린 바위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이 그림들은 선사시대 이래 한반도·시베리아·몽골·중앙아시아 사이에 인간의 이동과 문명의 교류, 혈연의 중첩 등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몽골에서 터키에 이르는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여러 국가는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고구려와 돌궐의 관계를 예로 들며 한국을 ‘형제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알타이에 기원을 둔 민족이 대륙의 세력 부침에 따라 동서로 이동해 오늘의 형세를 이루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와 몽골-투르크 벨트의 역사관계를 조사·연구하면 한국사의 지평은 아시아대륙 전체로 확장될 수 있다. 마침 동북아역사재단은 투르크 아카데미와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했다. 투르크 아카데미는 중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학술교류를 증진하기 위해 2010년에 설립된 국제기구다. 카자흐스탄·터키·키르기스스탄·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이 연계돼 있다.

 역사·문화·혈연 등에서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 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터키 등과의 상호관계를 구명(究明)하면 중화주의에 오염된 역사관을 극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역사상이 수립될 것이고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왜곡은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상을 보완하는 탈출구도 열린다. 『삼국사기』를 다시 쓴다는 각오로 아시아 여러 민족과 한국의 역사를 접목시키는 조사 연구를 끈질기게 추진해야 한다.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