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애수'

중앙일보

입력

영국의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1904~91)은 생전에 어느 정치인의 부인과 불륜에 빠져 화제를 뿌렸다.

그것도 은밀하게 즐긴 것이 아니라 매우 노골적인 사랑이었다. 부인과 더 쉽게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 가까운 곳에 살기도 했다.

그 부인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차분한 성격이었던 반면 그린은 늘 질투심에 불탔다고 한다.

그런데 그만 부인이 그린과 만나며 접한 술로 병을 얻어 세상을 일찍 떠나면서 둘의 사랑은 비련으로 끝나고 만다. 그린은 병상에 누운 연인을 만나려 안달이었지만 그 연인은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끝내 그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의 회한이 얼마나 컸던지 그린은 뒷날 자신의 로맨스를 소설 '사랑의 종말' 에 담았다.
허구적인 요소는 무신론자인 주인공 소설가가 가톨릭 쪽으로 기울고 연인의 임종을 지킨다는 대목 정도이다.

그린의 자전적 소설 '사랑의 종말' 을 영화화한 '애수' (원제 The End of The Affair)는 원작에 충실하다.

40년대 초 전쟁 중인 영국을 배경으로 순수와 열정을 축축하면서도 애절하게 그렸다.

'크라잉 게임' '마이클 콜린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닐 조던 감독이 처음 연출한 멜로물인데다 '쉰들러 리스트' '잉글리쉬 페이션트' 의 랄프 파인즈와 '부기 나이트' 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줄리안 무어 등 출연진도 탄탄해 관심을 둘 만한 작품이다.

소설가 모리스(랄프 파인즈)는 새 작품 주인공을 더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 공무원인 헨리(스티븐 레이)를 찾았다가 헨리의 아내 사라(줄리언 무어)에게 반한다.

그들의 사랑은 줄기차게 비를 뿌리는 런던의 음울한 분위기에 실려 더 운명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던 어느날 둘이 뜨거운 사랑을 나눌 때 집에 폭탄이 떨어져 모리스가 죽는다.

순간 사라는 '모리스를 살려주신다면 그를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 고 신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그 정성이 통했을까. 얼마후 모리스가 살아난다. '기적' 을 확인한 사라는 신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못해 발길을 돌린다.

"우리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사랑할 수 있듯이 꼭 만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어요" 라는 말을 남기고 황량한 거리로 나선다.

그렇지만 모리스는 자신을 향한 사라의 애정이 다른 사람으로 넘어갔다고 단정한다.

그렇지만 사랑에서만은 인간은 무척 탄력적이지 않는가.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건만 둘은 추억을 다 털어내지 못하고 다시 만난다. 출연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고 이야기 전개가 평면적이지 않아 좋다. 플래시백 기법으로 사라와 모리스의 입장에서 그 순간의 심리상태를 그려 이해를 돕는다.

올해 골든 글로브상에서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음악상, 아카데미상에서는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못했다. 22일 개봉.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