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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 발목 붙들 복병, 스타트·스파이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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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볼트가 23일 대구시 율하동에 위치한 박주영 경기장에서 스타트 연습을 하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파월(左), 월터 딕스(右)

세계선수권 2연패를 위한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의 고민이 깊어간다. 100m 결승날까지 남은 기간은 이제 사흘. 신체적인 준비는 사실상 끝이 났다. 볼트는 영혼의 준비에 돌입했다.

 볼트는 방한 후 후원사 P사의 스파이크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신을 스파이크 색깔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때 신은 금색이냐, 2009 베를린세계선수권 때의 오렌지색이냐, 아니면 자메이카를 상징하는 노랑이나 녹색이냐. P사는 이미 스파이크 55켤레를 공수해 왔다. 볼트는 “스파이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세계신기록을 세웠던 베를린대회 때의 느낌을 주는 스파이크를 찾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영혼이 통하는 스파이크가 있는 듯하다. P사는 “볼트가 좋은 기록을 낼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스파이크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길어지는 고민의 시간만큼 우려의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볼트가 세계기록을 세울 때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건 본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스타트만 잘하면 100m 타이틀 방어는 문제 없다”고 자신한다. 그의 약점인 스타트 능력은 그리 많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볼트는 1m96㎝·94㎏의 거구다. 큰 키만큼 다리도 길다. 순발력이 떨어져 경쟁자들보다 스타트가 느릴 수밖에 없다. 9초58의 남자 100m 세계신기록을 세운 베를린 대회에서도 볼트의 출반 반응 속도는 좋지 않았다. 0.146초로 결승에 오른 8명 중 6위였다. 하지만 40m 이후 폭발적인 질주로 타이슨 게이(출발 반응 속도 0.144초)와 아사파 파월(출발 반응 속도 0.134초)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땄다.

 문제는 여기 있다. 스타트의 약점을 후반부 폭발적인 가속력으로 만회한 볼트의 질주능력에 의심을 품는 이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전문가가 아토 볼든(트리니다드토바고)이다. 1990년대 세계 단거리계의 ‘빅 스리’로 통한 그는 97 아테네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땄다. 볼든은 23일(한국시간) 미국 방송프로그램 유니버설스포츠에 출연해 “볼트는 올 시즌 200m(19초86) 기록이 부진하다. 이는 막판 스퍼트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볼든의 말처럼 200m는 스프린터의 가속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다. 볼트가 보유한 100m 세계기록은 9초58, 200m 19초19다. 100m 기록에 2를 곱하면 19초16으로 200m 기록보다 0.03초 빠르지만 큰 차이는 없다. 반면 올 시즌 그의 100m 최고기록 9초88에 2를 곱하면 19초76으로 올 시즌 200m 개인최고기록 19초87과 0.11초나 차이 난다. 출발 후 가속도가 예전만 못하다는 증거다.

 게다가 완전치 않은 볼트의 상황을 잘 아는 경쟁자들의 도전이 거세다. 라이벌 아사파 파월(자메이카)은 올 시즌 9초78로 시즌 베스트기록을 세웠다. 올 시즌 볼트의 최고기록보다 0.1초나 빠르다. 파월이 대구에서 복수전을 벼르는 이유다. 볼트의 강력한 경쟁자 파월은 “볼트와 비교해 우위에 있는 스타트를 대구 대회에 맞춰 더욱 보강했다”고 했다. 볼트의 약점인 스타트를 집중 공략해 대구에서 ‘넘버1’이 되겠다는 각오다.

 미국 대표인 월터 딕스(개인 최고기록 9초88)도 “40m 지점까지 내가 볼트보다 한 걸음만 앞서면 이길 수 있다”며 초반에 승부를 걸겠다고 했다. 올 시즌 상승세를 타고 있는 리처드 톰슨(트리니다드토바고·올 시즌 9초85)과 응고니자셰 마쿠샤(짐바브웨·올 시즌 9초89)도 볼트를 넘어 깜짝 우승을 노린다.

글=김종력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100m 스타트=규정상 출발 반응시간 허용치는 0.1초다. 사람이 청각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데 최소 0.08초, 근육이 반응하는 데 최소 0.02초가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발 신호 후 0.1초 미만의 반응 속도로 스타트하면 예측 출발로 간주돼 부정 출발이 된다. 한 번만 부정 출발을 해도 실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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