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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완, 케인스 앞세워 헤지펀드 규제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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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부가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 가능성을 내비쳤다. 박재완(사진)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준의 자본 이동은 보장하되, 부작용이 있는 일부 자본에 대해서는 적정한 규제가 가해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제파생상품 콘퍼런스’에서다.

 그는 ‘최근 금융환경 변화와 헤지펀드의 발전 방향’이라는 제목의 환영사를 통해 “자유무역과 자본 자유화가 19세기 이후 세계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지만 최근 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건전한 자본과 투기적 자본을 구분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고 자본 유·출입의 속도를 제어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학계나 금융계에서 헤지펀드를 보는 시선은 크게 엇갈린다. ‘새로운 금융공학과 시장 분석기법으로 금융시장을 발전시킨다’는 긍정론과 ‘투기적인 자본 거래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오는 주범’이라는 비판론이다. 하지만 박 장관은 1994년 멕시코 페소화 위기,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99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과 롱텀캐피털의 파산, 2008년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헤지펀드의 부작용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요 신흥국 증시 폭락이 글로벌 헤지펀드에 따른 것으로 보는 시장 분위기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근대 경제학의 거두인 케인스의 발언을 헤지펀드 규제에 대한 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케인스가 1933년 ‘자족국가론(National Self-Sufficiency)’이라는 논문에서 “사상·지식·과학·호의·여행은 본질적으로 국제적이어야 하지만 상품은 가능한 한 국내에서 생산되도록 하고, 무엇보다도 금융은 원칙적으로 국내에서 이루어지도록 하자”고 주장했다는 내용이다. 케인스도 금융의 국제화가 가져오는 자본 유출(capital flight)의 위험성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장관은 “국제통화기금(IMF)도 자본 자유화를 지지하던 입장에서 선회해 과도한 자본 유·출입에 대해서는 적정한 정책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채택했다”고 소개했다.

 헤지펀드의 규제 방향으로 그는 ▶국가 간 조화된 정책 공조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금융안전망 구축 ▶금융기관에 대한 미시적 금융규제 체계 완비 등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박 장관은 “자본 흐름과 관련된 새로운 금융질서는 국가 간 조화된 정책 공조를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각국의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신속하게 유동성을 공급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체제를 글로벌·지역 수준에서 마련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와 함께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에 대한 미시적 규제가 필요하며, 해당 금융기관도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해용 기자

◆헤지펀드(hedge fund)=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헤징(hedging·위험 회피)’ 하는 펀드를 통칭한다. 증시에서 매도·매수를 동시에 진행하거나 현·선물을 나눠 투자하는 등 다양한 금융기법을 활용해 수익을 낸다. 헤지펀드의 투기적 성향이 짙어진 것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다. 92년 조지 소로스가 운영하는 헤지펀드가 2주 만에 1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를 팔아 치우며 영국 파운드화 폭락을 부추겨 떼돈을 벌었다. 이후 헤지펀드는 국제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세력의 ‘대명사’로 꼽히기 시작했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기획재정부 장관(제3대)

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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