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페셜 리포트] 새 아파트 10만 가구 빈집 … 한쪽선 전세 못 구해 난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오재욱(37·서울 서대문구)씨는 다음 달 전세계약 만기를 앞두고 최근 퇴근 후 경기도 고양시 일대를 찾았다. 오른 전셋값 5000만원을 마련할 자신이 없어 전셋값이 싼 아파트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고양 일대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가 많아 저렴하게 전셋집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중개업소들엔 전세 물건이 많지 않았다. 전셋값도 만만찮았다. 수천 가구의 대단지에 불 꺼진 집이 많아 단지 주변은 썰렁하기만 했다.

오씨는 “새로 들어선 아파트에서 전세물건이 쏟아져 나오고 전셋값도 쌀 것으로 기대했는데 영 딴판이었다”며 아쉬워했다. 고양시 굿모닝동문공인 이원복 사장은 “새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도 빈집이 많다 보니 전세로 나올 물건이 적다”며 “새 단지가 전세난 해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불 꺼진 새 아파트가 전세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다 지어놨는데 주인이 없는 미분양 아파트거나, 주인은 있어도 잔금을 내지 못해 열쇠를 받지 못한(미입주)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전세난을 더는 데 집 한 채가 절실한 마당에 전셋집으로 쓸 수 없는 빈집만 늘어나는 상황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준공 후 미분양은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3만9704가구다. 지방에선 주택 경기가 좋아 줄었지만 수도권은 갈수록 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1만 가구를 넘었다. 지난해 6월 6185가구에서 1만430가구로 1년 새 5000여 가구 증가했다.

 미입주 물량은 이보다 훨씬 많다. 업계는 수도권 2만여 가구, 전국적으로는 6만여 가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준공 후 미분양과 미입주 물량을 합치면 수도권 3만 가구, 전국적으로 10만 가구 정도다.

 이는 올 한 해 전국에서 입주하는 아파트 19만 가구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국토해양부 전·월세 실거래가 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3~6월 월평균 거래건수는 11만9900여 건이다. 거의 한 달 동안 거래되는 물량이 준공 후 미분양과 미입주 주택으로 잠자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대규모 입주가 전셋값을 안정시키던 시장구조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고양시에는 지난해부터 덕이·식사동 등에서 1만2000가구가 완공됐지만 미분양 등으로 비어 있는 집이 7000가구가량 된다. 용인의 경우도 지난해부터 1만4000여 가구가 준공됐지만 역시 미입주를 포함해 7000여 가구 이상이 빈집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들어선 3300여 가구의 대단지에 불이 켜진 집이 드물다. 아직 팔리지 않은 미분양과 입주하지 않은 집이 많아서다. [박일한 기자]<사진크게보기>


 이렇다 보니 고양과 용인에 집이 대거 들어섰는데도 전셋값은 강세다. 올 들어 7월까지 각각 8%, 10% 올랐다. 이는 수도권 평균 상승률(6%)보다 높은 것이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선임연구위원은 “물건을 만들어도 창고에 많이 쌓여 있다 보니 시장에서 구하기 힘든 셈”이라며 “빈집이 주택공급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준공 후 미분양과 미입주가 늘어나는 것은 주택시장 침체 때문이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꺾이다 보니 주택 수요자들이 미분양을 꺼리는 것이다. 특히 중대형 집값이 약세를 보이면서 준공 후 미분양 대부분이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이다.

 미입주는 입주하려는 사람들이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못해 발생한다. 잔금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입주하지 못하는 것이다. 집값이 불안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8월 준공된 고양시 한 아파트 단지에서 1000여 가구가 한꺼번에 계약을 해지했다. 계약 해지된 물량은 준공 후 미분양이 된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대형 건설업체 주택사업 임원은 “당초 투자목적으로 분양 받았다 준공 후 웃돈(프리미엄)을 받기 어렵자 계약을 해지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준공 후 미분양과 미입주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분양이 남아 있으면서 공사 중인 단지들이 잇따라 준공되는데 앞으로 주택시장 전망도 밝지 못해 미분양이 줄어들길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공사 중인 미분양은 3만3000여 가구며, 수도권에서만 1만7000가구 수준이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공사 중인 미분양의 80% 이상이 요즘 주택시장에서 홀대 받는 중대형이어서 상당수가 준공 후에도 미분양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에만 맡겨서는 준공 후 미분양과 미입주가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대책들은 별로 약발이 없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준공 후 미분양 매입은 LH의 자금난으로 올해부터 중단됐다. 정부는 지난 8·18대책에서 준공 후 미분양이 많은 지역에 광역 급행버스 노선을 확충키로 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을 것 같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준공 후 미분양 등은 교통문제가 아니라 침체돼 있는 주택 매매시장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매매시장을 활성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정부가 준공 후 미분양인 중대형을 중소형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하면 주택 공급도 늘리고 전세난 해소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 측에서 준공 후 미분양을 전세로 돌릴 수 있는 당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미분양을 전세로 돌리는 업체에 자금 지원이나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박일한 기자

◆미분양=새로 분양된 주택 가운데 팔리지 않은 물량을 말한다. 특히 다 지은 뒤에도 남아 있는 준공 후 미분양은 준공 전 미분양보다 잘 나가지 않아 ‘악성 미분양’으로 불린다. 미분양 현황은 주택경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의 하나다. 정부는 업체들이 자치단체에 신고한 미분양 물량을 집계해 매달 통계를 발표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