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어 공부한 44세 교도관 “해적재판 통역까지 맡게 됐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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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8일 부산고등법원 301호 법정. 당초 2시로 예정됐던 해적재판 상고심이 3시 30분에야 개정했다. 통역을 맡고 있는 통역인 알리가 서울에서 부산행 KTX를 늦게 타는 바람에 법정에 지각, 기다리다 못해 개정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 진행이 뒤뚱거렸다. 알리도 없고, 해적단의 통역담당인 아울 브랄랫(19)가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판장인 최인석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이 구치소에서 우리나라 말을 배운다고 하던데 한국말 안되나…”라며 답답해했다. 이때 부산구치소 측에서 박흥렬(44·사진) 교도관을 임시통역으로 추천했다. 그가 유창한 소말리아어로 재판이 늦어진 상황을 설명해나가자 해적들은 즉시 ‘오케이, 오케이’하며 반응을 보였다. 판사도 방청객들도 깜짝 놀랐다.

 박 교도관이 소말리아어를 배운 것은 해적들이 청해부대에 붙잡혀 구치소에 들어온 지난 2월 8일부터다. 당시 구치소장이 해적과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인권적 처우를 위해 2명의 소말리아 전담반을 구성했는데 박 교도관 여기에 소속돼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반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해적들에게 소말리아 글을 가르치고 있다. 해적들이 교육을 받지 못해 읽고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박 교도관은 다음달 8일 열리는 해적재판 상고심 선고공판에서는 단독으로 통역을 맡게 됐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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