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조현욱의 과학 산책

북한산 옮기는 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콘텐츠본부장

가을 취업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면접 시험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북한산을 어떻게 부산으로 옮길까?” 다음은 필자가 생각해 본 답이다. 첫째, 부산 인근의 토사로 북한산과 같은 지형을 만들고 백운대나 사모바위 등의 상징적인 암석만 실물을 옮긴다. 어차피 산을 크레인으로 파내서 트럭에 싣는다 해도 그 순간 그것은 ‘토사’로 변하기 때문이다. 둘째, 산 전체를 가로 세로 2m, 깊이 5m씩 차례로 절단해서 냉동한 뒤 밀폐 용기에 넣어 부산까지 트럭으로 옮긴 뒤 하나씩 재조립한다. 셋째, 산 전체를 거대한 삽으로 떠서 옮길 수 있는 거대한 로봇을 개발한다.

 원래 이런 질문에 ‘정답’ 같은 것은 없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다음 질문은 그렇지 않다. “서울에는 얼마나 많은 피아노 조율사가 있을까?” 답: (1) 서울 인구는 1000만 명으로 가정한다. (2) 한 가구에 2.5명이 산다고 가정하면 총 가구수는 400만이 된다. (3) 40가구당 피아노 1대가 있다고 가정하면 서울에는 총 10만 대가 있다. (4) 피아노 조율은 1년에 한 번씩 한다고 가정한다. (5) 조율사는 하루에 네 대의 피아노를 조율하면서 1년에 250일 일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면 한 명이 1년에 1000대를 조율할 수 있다. (6) 1년에 10만 회의 조율이 이뤄지려면 100명의 조율사가 필요하다(10만/1000=100). 이것은 학교나 오케스트라, 공연장 등에서 보유한 피아노를 제외한 추정이다.

 이런 질문과 해결법은 페르미 문제, 페르미 추정이라 불린다. 이탈리아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1901~1954)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전 세계에 있는 해변의 모래알 수는?” 등의 질문을 던진 것으로 이름 높다. 그가 창안한 피아노 조율사 문제는 근래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면접에 “세계에는~”이란 형식으로 출제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좋은 질문이라 할 수 없다. 지식이 아니라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측정하려면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MIT, 칼텍, 컬럼비아 같은 명문대학은 페르미 추정을 가르치는 강좌를 항시 개설해 두고 있다. 위의 회사들은 은연중 명문대 출신을 뽑고 싶었던 것일까?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콘텐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