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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적을 넘어 세상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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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홍규
KAIST 교수·경영과학과

잘나가다가도 하루아침에 급전직하할 수 있는 곳이 기업의 세계다. 세계 일류 기업이었던 코닥과 IBM이 그랬고, 노키아·MS도 그럴지 모른다. 삼성전자라고 예외일 수 없다. 세계 일류 기업에 갑자기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와해적(disruptive) 혁신이 나타날 때다. 삼성전자의 위기도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기존의 점진적 혁신 커브와는 다른 새로운 혁신 커브가 나타난 것이다. 기기 성능 위주의 경쟁이 성능·디자인·운영체제·서비스의 경쟁으로 바뀐 것이고, 제품기술의 경쟁이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으로 바뀐 것이다. 

 와해적 혁신의 출현이란 경쟁의 논리와 규칙이 변함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런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은 단 하나 자신의 역량을 그에 맞춰 변화시키는 길뿐이다. 삼성전자가 답해야 할 것도 바로 이런 문제들이다. 첫째는 삼성이 과연 새로운 시대를 담아낼 그런 조직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애플이 보여준 새로운 트렌드는 제품의 소프트화·서비스화다. 수십 년간 쌓아온 하드웨어의 역량을 하루아침에 디자인·소프트웨어·서비스의 역량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거대기업으로 이런 변화에 성공한 전례는 아마 IBM 정도일 것이다. 컴퓨터 시장 수익의 70%까지 차지했던 IBM이 한순간에 도산의 위기까지 내몰렸을 때 이를 구한 것은 루 거스너란 외부 영입 CEO였다. 그는 하드웨어 기업을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의 기업으로 바꾸는 조직역량을 만들어냈다. 그의 탁월성은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인 데 있다기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지식과 통찰력으로 무장된 조직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두 번째는 삼성이 과연 사고의 자유와 활력이 넘치는 조직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삼성에는 일본식의 치밀함과 엄격함의 문화가 있다. 이러한 문화는 효율성을 올리는 데는 효과적이나 창의적 실험 정신은 억압하기 마련이다. 기업 규모가 크면 클수록 부하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상사의 소극적 태도를 만나기 마련이고, 사내의 소통에는 창조적 시너지를 위한 협력보다 비판과 견제만이 있기 마련이다. 단기적 업적주의는 장기적 목표를 갉아먹게 될 것이며, 도전과 실험의 위축으로 미래의 기회는 날아갈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아무리 S급 인재가 많아도 그 역량이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법이다. 루 거스너의 위대성은 공룡기업 IBM을 ‘춤추는 코끼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직의 탄력성은 높아졌고, 시장의 목소리는 조직에 스며들었고, 계획을 위한 계획은 폐기되었다.

 삼성이 답해야 할 또 다른 질문은 과연 얼마나 강력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생태계는 자신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주위까지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삼성이 지금까지 잘한 것은 팀플레이보다 단독 플레이다. 팀플레이는 동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신뢰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월마트도, 애플도 그런 생태계를 만들었기에 강자가 된 것이다.

 소프트화·서비스화의 바람은 스마트폰 시장에만 불 바람이 아니다. 태블릿 PC, 스마트 TV, 클라우드 시장까지 불어갈 바람이다. 그러기에 이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그러나 전쟁에서 이기려면 적을 쓰러뜨릴 궁리만 해서는 안 된다. 천시(天時)를 읽고 지세(地勢)를 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이고, 핵심은 소비자의 숨겨진 욕구를 찾아내는 것이다. 하버드 비즈니스리뷰의 한 논문은 “너무 늦기 전에 당신의 비즈니스를 재창조하라”고 했다. 물실호기(勿失好機), 위기가 곧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인 것이다. 한국 경제의 자존심, 삼성전자에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고 싶다.

이홍규 KAIST 교수·경영과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