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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한국서 특별한 인기 … 세계적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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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이야기 솜씨도 그림 못지 않았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허름한 펍에서 소년은 밤마다 손님들에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림도 곁들였다. 그의 상상 속 수퍼 영웅들이 종종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65)은 “다섯 살 무렵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언제 자신이 작가가 될 거라는 걸 알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60년간 한길을 걸어온 건 아니다. 도리어 먼 길을 돌아왔다. 그렇게 돌고 돌아온 길은 그를 당대 최고의 그림책 작가로 만들어줬다. 지난 7일 브라운을 만나 그 ‘역설의 여정’을 들었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앤서니 브라운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그림책 원화 280여 점을 전시하는 ‘동화책 속 세계여행’전을 열고 있다.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해 13일간 머물렀다. 비즈니스 출장치고는 꽤 긴 일정이다. 그는 흰색 데님 바지에 스포츠 샌들을 신고 전시장에 나타났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동안(童顔)에 수줍은 듯하면서도 적극적인 태도는 호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일요일 미술관 나들이 왔다가 뜻하지 않게 브라운과 마주친 관람객들은 환호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아이가 있으면서 당신 책 한 권 없는 가정이 없을만큼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많다.

 “국가별 책 판매량을 일일이 세지는 않지만, 독자 반응이 가장 긍정적인 곳이 한국임은 확실하다. 현재로서는 한국이 가장 큰 시장인 것 같다. 한국에는 세 번째 왔다. 지난 5월과 이번까지, 올해만 두 번 왔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애정이 크다. 한국 엄마들과 아이들, 때로는 아버지들까지 한국 독자들의 반응을 접하고 무척 기뻤다.”

●한국 부모들이 당신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알고 싶지 않다. 그냥 기쁘게만 생각하고 싶다. 이유를 알면 실망할까 봐 그렇다. 다른 뛰어난 작가들도 많은데 그걸 알고 나면 내 이름이 지고 다른 사람들이 뜰까 봐. (웃음)”

 브라운은 어른들이 열광하는 어린이 책을 만드는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다. 1976년 『거울 속으로』를 펴낸 이후 총 41권의 그림책을 출간했다.

●데뷔 35년이 됐다.

 “35년인가? 세상에… 그렇게나 됐나. 믿어지지 않는다. 나는 최고의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니까. 지금도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하루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버지가 자신이 운영하는 펍에서 손수 그린 단골들의 캐리커처를 벽에 걸고 있다. 1950년.

앤서니 브라운(오른쪽)과 형 마이클. 1959년 무렵

●작가가 될 거라는 걸 언제 알았나.

 “아주 어릴 때부터 하고 싶던 일이다. 한때는 세 개의 직업을 놓고 고민했다. 만화가, 저널리스트, 권투 선수였다. 권투 선수가 되지 않은 건 다행이다. (하하) 난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만화가는 아티스트 중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이고, 저널리스트는 작가와 비교해 ‘제대로 된 일자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하는 일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측면에서 만화가·저널리스트와 비슷하다.”

●일자리에 일찍 눈뜬 건 생계 문제 때문이었나.

 “내 출신 배경은 중하층(lower middle class)이라고 설명하는 게 맞을 듯하다. 아버지도 그림에 재능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커리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좌절하고 실망하는 걸 곁에서 지켜봤다. 내가 일자리를 갖게 되면 아버지의 번뇌에 대한 응답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출신 배경이 작가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나.

 “나와 형, 우리 가족은 주류사회에 속하지 않았다. 그들의 옷차림, 말투, 교육 등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걸 한편으로 즐겼던 것 같다. (밖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평가하곤 했다. 나는 체질적으로 아웃사이더였다. 나와 형은 럭비를 했는데,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은 잘 하지 않는 운동이다. 그런데 나는 나보다 훨씬 덩치가 큰 사람들과 경쟁한다는 흥분감이 있었다. 내가 그들보다 더 빨리 달리고, 태클도 하는 게 짜릿했다.”

●키가 몇이기에.

 “늘 1m68cm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1m65cm 정도로 줄었겠다.”

 브라운은 17세 때 리즈예술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순수미술 대신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자신과의 타협이었다.

 “하지만 난 그래픽 디자인이 정말 싫었다. 대부분 광고 쪽 일을 하는데, 난 광고에 관심이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고, 손에 물감을 묻히고 싶었다. 나는 매우 불행(unhappy)… 아니, 불행이라기보다 그 상황이 불편(uncomfortable)했다. 당연히 훌륭한 학생도 아니었다.”

●타협한 걸 후회했나.

 “아니다. 지나고 나니 순수미술을 하지 않은 게 오히려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순수미술과 갤러리의 세계는 어린이책보다 훨씬 더 상업적이더라.”

●역설적이다. 책이 더 ‘상품’에 가까운 거 아니냐.

 “맞다. 하지만 난 상업적인 걸 의식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릴 수 있다. 순수미술계에서는 성공한 작품이 나오면 갤러리에서 ‘비슷한 그림 하나 더 하자’ ‘이번엔 파란색으로 하자’고 작가에게 제안을 하기도 한다. 난 그런 걸 피해갈 수 있었다. 그림책을 통해 더 큰 자유를 얻은 것이다. 한때의 유행이나 인맥을 통해 좌우되는 게 아니라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성공 여부가 판명난다. 어린이 책은 순수미술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우월하다.”

 브라운은 그림책 작가가 되기 전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대학 졸업 후 첫 일자리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병원 수술실 한쪽에서 수술 과정 또는 인체 장기를 사진처럼 세밀하게 그리는 일이다. 슬라이드로 만들어 의대생들 교육용으로, 또는 학술논문에서 새로운 수술법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이후 광고회사를 잠깐 거쳐 15년간 축하 카드를 그렸다.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시절 간 수술 과정을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1970년 무렵.

그림책 『터널』의 한 장면. 출처:앤서니 브라운 『나의 상상 미술관』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카드 디자이너 일이 지금의 당신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나.

 “그때의 다양한 경험으로 그림책 밖의 세상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면서 상황을 이해하고, 복잡한 상황을 간결하게 표현하되 사진처럼 세밀하게 그리는 것을 배웠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수술 속도에 맞춰 순발력도 길렀다. 그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모두 지금 내 작품의 밑거름이 됐다.”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건 절반은 우연, 나머지 절반은 청소년기에 닥친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그의 아버지는 전쟁 후유증을 앓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브라운이 17세 때, 그의 눈앞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 난 그래픽 디자이너도 순수미술 작가도 아니었다. 그래픽 디자인 전공으로 졸업작품을 만들었는데, 한 심사위원이 ‘이건 그래픽 디자인이 아니니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평가했다. 동물의 행동과 인간의 행동을 비교하는 그림이었다. 교수님들은 내가 열심히 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낙제를 시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래픽 디자인 전공자로 인정해 주지도 않았다. 일자리를 찾다가 『여학생을 위한 직업』이라는 책에서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한동안 내게 드리워져 있었다. 인체에 탐닉하던 내게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은 흥미를 끌었다.”

 3년쯤 지나자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을 내일이 반복됐다. 인체 장기 그림에 남몰래 유머를 넣기 시작했다. 떠나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직감했다. 축하 카드 회사로 옮겨 동물, 사람을 주제로 한 생일·밸런타인·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렸다. 돈 좀 벌어보자고 부업으로 시작한 게 그림책 작업이었다.

 “생활은 그럭저럭 됐지만 풍족하지는 않았다. 카드회사 사장은 ‘카드 생산량을 늘릴 여력이 없으니 투잡을 뛰어 보라’고 제안했다. 출판사 두 곳을 찾아갔다. 한 곳은 글을 주고 그에 맞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다른 출판사는 그림과 글을 함께 써보라고 제안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 펍 한 구석에서 그림을 그리고 손님들에게 이야기를 풀어내던 때가 생각났다. ‘맞아. 난 이미 그림책을 만들었는걸, 그 옛날에’. 그림책의 대가가 되겠다는 불타는 야망이 있었던 게 아니라 우연히 이 세계를 발견했다.”

●부모님의 교육 방식은 어땠나.

 “나와 형은 부모님의 사랑과 격려를 듬뿍 받으며 컸다. 우리는 늘 경쟁했지만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누가 더 낫다고 말하지 않았다. 늘 둘 다 훌륭하다고 격려했다. 우리가 아무리 채근해도 어머니는 한 명을 꼽지 않았다. 이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예컨대, 자기는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못하게 된다. 다른 과목도 비슷하다. 어른들이 그림을 못 그리는 건 못 그린다고 생각하고 언젠가 그림 그리기를 중단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섯 살짜리 아이들은 뭐든 그릴 수 있다고 대답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당신은 어떤 아버지인가.

 “20대 후반인 아들과 딸을 뒀다. 7년 전 이혼할 때 아내가 그랬다. 당신은 좋은 남편보다는 좋은 아버지였다고.”

●칭찬인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좋은 아빠가 낫지 않을까. 그게 바로 문제이긴 했지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거니까, 뭐, 후회는 없다. 글쎄, 어쩌면 조금….”

●좌절을 겪을 때 당신을 지탱해 준 힘은 뭔가.

 “뭔가 창조하는 것을 즐기고 뭔가 만들어내고 싶은 열망이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도 내겐 힘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끊임없이 격려받은 것도 내 힘의 원천이다.”

●당신이 성공한 비결 다섯 가지를 꼽는다면.

 “음…어렵네. 첫째로 성실했다는 것. 음악인이든 미술인이든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 나는 매일 그린다.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둘째로 조언처럼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남이 되려고 하지 마라. 출판사로부터 성공한 남의 작품과 비슷하게 그려달라는 요구를 받을 수 있다. 이때 좌절하지 말고 계속해서 시도하면 언젠가는 자기 스타일의 책을 출판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나도 출판사의 요구대로 제작해 준 적이 있지만, (당연히) 그런 책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셋째로 눈을 써라. 진심으로 봐라. 우리는 보는 것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바라보고, 거기서 생각을 얻어라. 넷째로 많이 읽어야 한다. 다섯째로 스토리에 진정성을 실어라. 단지 멋내기 위해 뭔가를 쓰지 마라.”


76년 『거울 속으로』 이후 41권 … 상징·풍자 넘치는 작품세계

『고릴라』 『돼지책』 … “아이들 이해력 무시하지 마세요 ”

사실적인 그림 속에 몽환적인 이야기, 초현실주의적 표현 기법, 다양한 상징과 비유 및 풍자, 현대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 묵직한 주제. 베스트셀러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관통하는 특징들이다. 어린이 책에서 흔치 않은 접근 방식으로 브라운은 그림책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림책 분야에서 최고 권위로 꼽히는 안데르센상과 영국 최고의 그림책에 수여하는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받았다. 『고릴라』 『돼지책』 『우리 아빠가 최고야』 『우리 엄마』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두터운 팬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책은 위트가 있지만 주제가 현실적이면서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던진다. 항상 바쁜 아빠를 대신해 어린 소녀를 데리고 동물원에 가는 『고릴라』, 아내와 엄마에게 집안일을 떠맡기고 빈둥거리는 남편과 아이가 돼지로 변하는 『돼지책』은 소통이 단절된 가족, 페미니즘과 성 역할 같은 주제를 건드린다.

●아이들에게 주제가 너무 무겁진 않을까.

 “아이들은 내 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 복잡하다, 어둡다’ 이런 말은 어른들의 선입견이다. 우리는 어린이의 능력을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야기를 어떻게 개발하나.

 “『터널』이라는 그림책은 남매의 이야기인데, 책을 완성하고 형에게 보여주니 ‘어, 우리 어릴 적 살던 곳에 있던 위험한 터널이네’ 하더라. 아마도 무의식 속에서 영감이 떠오르는 것 같다. 내게 일어난 일, 어렸을 적 기억, 내가 꾼 꿈, 본 영화 등 내 경험과 맞닿아 있다. 모든 작가는 아이디어를 어딘가에서 빌리는 것이다. 어릴 적 형과 했던 모양 놀이(shape game)도 내 상상력의 원천이다. 첫 번째 사람이 간단한 모양을 그리면 다음 사람이 그걸 완성해 그림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림 그리기가 어른들에게도 도움이 될까.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모양 놀이는 그림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 상상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음악과 미술, 과학으로도 연결된다. 머릿속 한 부분을 자극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한 가지를 보고 다른 걸로 만들어내는 변형이다. 소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미지나 아이디어 같은 게 떠오르면 그걸 중심으로 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책의 결말을 열어놓는 편인데, 그 이유는 뭔가.

 “독자들이 주인공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책이 끝난 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의 결말을 단정짓지 않는다. 또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게 책을 마무리하려고 노력한다. 어린이 독자들을 슬프게 만들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결말도 내가 원하는 건 아니다.”

●평범한 하루의 일과는.

 “사무직과 비슷하다. 정장을 입진 않는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조깅하고 오전 9시30분까지 사무실에 출근한다. 오후 6시쯤까지 내리 일한다. 나는 이런 규칙적인 일상이 좋다. 밤낮을 바꿔 살거나 일을 몰아서 하는 식의 ‘로맨틱’한 아티스트는 아니다. 난 영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직접 부딪치고, 망치고, 다시 또 도전하는 걸 더 좋아한다.”

●그림과 글을 동시에 하는데.

 “그림과 글 사이에 간극이 있는 책이 흥미로운 그림책이다. 그림은 글에서 좀 더 진전된 상황을 보여주거나 완전히 다른 걸 보여줘서 그 간극을 독자가 메우는 걸 추구한다. 글과 그림을 한 사람이 해야 그게 가능하다.”

j 칵테일 >> “고릴라 보면 선친 생각 나”

앤서니 브라운은 ‘고릴라 작가’로 불린다. 깃털을 세심하게 그려낸 고릴라 그림은 앤서니 브라운을 떠올리게 한다.

 왜 고릴라일까. “우선 보기에 근사한 동물이다. 주름살과 울퉁불퉁한 얼굴은 그림으로 그리기 훨씬 흥미롭다. 둘째로 사람과 무척 비슷하다. 눈은 특히 사람과 닮았다. 고릴라를 들여다보면 나를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섬뜩하지만 흥미로운 경험이다. 셋째로 고릴라를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덩치가 크고 강한 인상을 가졌지만, 나와 형에겐 영웅이었다. 매우 강인하지만 부드럽고 섬세하다는 고릴라의 특징도 아버지와 닮았다. 넷째로 사람같지만 사람이 아닌, 초현실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고릴라에 이어 킹콩, 침팬지, 개코원숭이, 원숭이 등 다양한 유인원이 주인공이 됐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겁쟁이 윌리』의 침팬지 윌리다. 윌리는 형의 그늘 속에서 자란, 뭐든지 형에게 지는 작고 보잘것없는 앤서니 브라운과,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수많은 사람을 모델로 삼았다. 고릴라의 세상에 살고 있는 침팬지는 어른들이 좌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특히 공감하는 대목이다. 윌리와 동일시한 수많은 어린 독자의 팬레터가 작가 브라운에게 수백 통 배달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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