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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가와 히로유키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

중앙일보

입력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는 가이낙스의 기념비적인 첫 제작 작품이며 반다이 사의 영상사업진출 첫 작품으로 기획된 작품으로 8억엔 이라는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작품이다.

감독은 그 당시 24살로 애니메이션 연출계에 큰 돌풍을 몰고 온 '야마가와 히로유키'.
메카디자인은 안노 히데야키가, 캐릭터 디자인은 사다모토 요시유키 등으로 메인 스텝진의 대부분이 당시 20세였다. 그들은 상업 애니메이션의 제작경험도 거의 없었지만 이 작품의 작화 레벨은 당시의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고 애니메이션 영화의 상식을 뒤엎는 철저하고 사실감 넘치는 묘사였다.

작화의 치밀함도 물론이거니와 '오네아미스 왕국'이라는 실존하지 않은 세계의 정밀한 설정 그리고 결코 영웅적이지 않고 일반인과 동등한 주인공들, 압도적인 리얼리티로 인해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틀을 벗어나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개봉당시 기대했던 만큼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결국 가이낙스를 재정난 봉착에 이르게 만든 작품이다. 그 후 87년 개봉했던 작품을 '삿뽀로 필름 패스타 97' 에서 새로운 돌비 디지털녹음으로 새롭게 버전업 하여 재 개봉하였다.

실사적인 연출기법과 밀도 높은 화면구성을 이용하여 현대 젊은이의 청춘을 그린 작품인 왕립우주군은 정밀하고 리얼한 화면처리로 '애니메이션 SFX' 라는 문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돌비 디지털의 음향, 종래의 4인치였던 음향효과를 5.1인치의 최신 극장용 돌비 시스템으로 리뉴얼하였다. 이 시스템은 '모노노케 히메(1997)' 에서 사용되었던 최신 극장용 디지털 사운드 시스템이다.

여기서 필자는 이 작품을 15개의 시퀀스로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해 봤다.

소년 시로크

오네아미스 왕국을 가로지르는 넓은 호수에서 해군이 함재기의 발착훈련을 하고 있다. 눈 속을 헤치고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년 시로크의 눈이 빛을 발산한다. 그는 해군에 들어가 하늘을 마음껏 나르는 꿈을 생애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성적불량으로 인해 오래 전부터 좌절되고 말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가장 인기 없다는 왕립우주군에 들어가게 된다.

한데, 그곳은 인간을 우주로 쏘아올리기 위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인공위성 조차 제대로 쏘아 올리지 못하는 곳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시로크는 꿈을 잃어간다.
오늘도 실험 중에 또 한 사람이 죽었다. 마지못해 뒤늦게야 장례식에 참석하고 다시 변함없이 훈련에 임하는 시로크. 하지만 이제 그는 무엇인가를 주도해나가는 적극적인 인간이 아닌 남에게 마지못해 끌려가는 듯한 무기력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죽은 친구를 애도하기 위해 술집에 들리는 시로크와 동료들. 동료인 마티와 헤어지고 혼자 걷던 시로크의 귀에 나지막하지만 힘있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집니다. 신은….'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 이지 않지만 시로크에게는 창백한 모습의 그녀에게서 그가 이미 예전에 잃어버렸던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리크니'

다음날 '리크니' 라는 그 소녀에게서 메시지를 전달 받고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사고로 직장 동료가 죽었다는 일부터 얘기하기 시작하던 시로크는 그녀의 반응에 당황한다. 전쟁이 아닌 우주로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 우주군의 존재에 감격하는 리크니의 말에 시로크는 가슴에 담아두었던 그 무엇인가가 일시에 해소되는 듯한 감동을 받고 그녀의 말에 크게 고무된다.

지원한 시로크

강의실에 모인 우주군 일동은 우주군의 책임자인 장군에게서 '유인우주비행계획' 을 듣는다. 장군은 열변으로 지원자를 모집하려 하지만 모두의 반응은 냉담했다. 오히려 모두들 속으로 비웃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시로크가 일어나 지원의사를 표시하자 모두들 놀라 웅성거린다. 열변을 토하던 장군마저도 자원한 사람이 시로크 라는 것을 알고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의 지원을 둘러싸고 동료들은 극구 만류하지만 이미 각오가 선 그에게는 그 말들이 허공에 메아리 칠뿐 분명하게 귓전에 와 닿지 않는다.
지난번의 사고로 더욱 위축된 우주군 본부에 서서히 활기가 돌아오고 모두 바삐 움직인다. 시로크는 각종 훈련과 실험에 열중하지만 실험결과는 모두 평균이하다.

처녀비행

훈련을 통과한 시로크는 중력훈련을 위해 공군의 연습기에 승선한다. 공군 병사들의 냉랭한 시선을 뒤로한 채 시로크는 연습기를 타고 하늘 저 멀리로 날아오른다. 구름의 사이를 뚫고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연습기. 마침내 어린시절의 꿈을 실현한 시로크는 가슴이 뿌듯해진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도 잠시, 시로크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비행기에서 내린다. 그런 그에게 공군 병사들은 냉소를 보낸다.

우주비행협회

중력훈련을 마친 시로크는 로켓의 제작현장을 견학한다. 그곳에서는 로켓의 제작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의 제작진들을 본 시로크와 동료들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제작자들 대부분이 노인으로 구성되어 도무지 신뢰감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의 불안감을 눈치챘는지 그곳의 책임자로 있는 크놈 박사는 그들의 불안을 일소 시켜 주기에 여념이 없다.

모든 계획을 하루하루 빈틈없이 진행되어갔다. 로켓의 제작과 시로크의 훈련, 그런 일상 중에서 시로크는 크놈 박사에게 점점 신뢰를 느낀다. 한편, 바쁜 훈련일정 속에서 짬을 낸 시로크는 저녁에 리크니의 집을 방문한다. 시로크의 기대를 이해하는 그녀는 별을 보며 기도한다.

시뮬레이터

우주군은 로켓제작과 훈련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다. 우주복의 제작도 시작되었다. 한편, 장군은 정부의 정식허가를 받기 위해 수도로 향하고…

어느날, 시로크는 리크니에게서 성경을 선물 받는다. 그러나 실상 그는 성경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고 리크니에게 한 발자국이라도 더 바싹 접근하고픈 마음뿐이었다. 그런 그의 태도에 리크니는 화를 내고 마침내 두 사람은 크게 다투게 되지만, 그런 둘을 보고 울던 마나 때문에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하지만 시로크의 가슴은 날카로운 비수에 의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한편, 우주군의 본부에는 본격적인 훈련을 위해 시뮬레이터가 도입되고 수도에서는 계획의 정식발표를 기념하는 의식이 열린다. 시뮬레이터 안에서 훈련 중이던 시로크는 당황해 하며 전화를 하는 리크니의 집으로 급히 달려가지만 그의 눈에 비친 광경은 철거된 그녀의 집이었다. 시로크는 넋을 잃고 물끄러미 앉아 있는 리크니를 종용해 재판을 걸려 하지만 정작 리크니 본인은 마나를 위해서도 재판을 포기 한다는 것이 아닌가?
매일같이 싸우는 모습을 마나에게 다시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리크니의 선물

시로크는 그의 침대에서 리크니에게서 받았던 성경을 펼쳐보며 원죄를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과학의 발전이 잘못된 것이라면 자신들의 지금 행위는 무엇이란 말인가? 시로크는 점차 그의 행동에 의혹을 갖기 시작했다.

로켓 폭발 사고

로켓 공장에서 로켓의 점화를 테스트 하던 크놈 박사가 갑작스러운 로켓의 폭발사고로 사망한다. 같이 있던 시로크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장례식에서 본 크놈 박사 부인의 슬픈 얼굴을 대하고 저미는 가슴을 억제할 길이 없었다.

데모

우주계획 발표이후 유인우주비행계획은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고 시로크에게도 취재경쟁이 벌어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주군의 본부 앞에서는 계획을 반대하는 데모가 연일 벌어진다. 시로크는 계획에 대한 의혹으로 갈등을 느끼고…

국방부

신문을 보던 마티가 돌연 놀라서 뛰어온다. 우주선의 발사장소가 국경선 근처로 변경된 것이다. 그곳은 이웃 나라인 리마다와 인접한 위험 지역이었다. 국방부에서는 로켓의 군사적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로켓을 위협수단으로 내세워 외교적인 목적에 이용하려 하고있었다. 장군은 그런 음모를 사전에 알아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단지 술만 들이킬 뿐이었다.

영웅 시로크

이런저런 사건이 터졌지만 시로크의 훈련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서도 그를 영웅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지만 정작 그의 마음속에는 이 계획에 대한 의혹으로 가득 찼다. 크놈 박사의 죽음, 항의 단체의 데모 등, 그는 점점 더 괴로워했다.
한편 그는 그러한 그의 혼란한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조금씩 성경에 의지하기 시작한다.

시로크의 기자회견

우주군 본부에서는 시로크의 기자회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기자들이 차례차례 그에게 질문을 하지만 무의미한 질문에 화가 난 시로크는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왔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던 그는 리크니의 집으로 발길을 향한다. 그리고 이웃 공화국에서는 로켓의 탈취를 도모하고 그 계획의 일환으로 먼저 시로크를 암살하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착수한다.

엇갈림

리크니의 거처에 피신해 있던 시로크는 그저 함구한 채 멍한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넋이 나간 그를 리크니는 그를 마나를 대하듯 똑 같은 정성으로 보살피지만, 그녀를 대하는 그는 단지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시로크는 리크니를 포옹하지만 그녀의 반항으로 그만 기절한다. 다음날 서먹서먹해진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그는 그녀에게 어제 저녁의 일을 사과하지만 그녀는 시로크의 잘못을 부정하고 오히려 그녀의 죄를 사과한다. 그런 리크니를 시로크는 의아해 하며 전송한다.

암살자의 공격

리크니와 헤어진 후 마티와 함계 시장으로 향하던 시로크는 암살자의 충격을 받는다. 당황한 마티와 시로크는 이리저리 피하지만 암살자의 시야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역에서 마티와 헤어진 시로크는 리크니의 집으로 몸을 은신하기 위해 역 구내로 들어가지만 그곳에서 청소차를 탄 암살자의 공격을 받는다. 간신히 암살자를 물리친 시로크는 비록 암살자일망정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시로크의 결의

꺼림칙한 기분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시로크에게 장군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주시하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려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장군의 말을 들은 시로크는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해 왔던 것을 샐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다녀 올께요' '다녀오세요'
단 두 마디의 인사말로 리크니와 작별을 고했지만 그들에게는 이 두마디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무한한 믿음이 깔린 작별이었다.

시로크의 기도

시로크의 암살에 실패한 이웃 공화국은 로켓을 탈취하기위해 오네아미스를 침공한다.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로 우주선의 발사가 취소되고 대피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지만 시로크의 열변으로 스텝들은 마음을 바꾸고 죽음을 각오한다. 마침내 공중전이 벌어진 하늘을 환한 빛이 뒤덮는다. 모두의 놀란 얼굴을 밑으로 우주선은 힘차게 그러나 조용히 날아오른다.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궤도상에 오른 캡슐에서 시로크는 라디오의 채널을 맞춘다.
'지금 지상에서 이 방송을 듣고있는 사람이 계십니까? 저는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 시로크입니다. 저는 처음으로 별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바다나 산이 그랬던 것처럼 신의 장소였던 이 공간도 이제부턴 시시한 인간의 활동무대가 되 버릴 것입니다. 지상을 오염시키고 하늘을 오염시키고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가는 인간은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가는 것이 용서되는 것입니까? 제발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에게 부탁 드립니다. 어떤 방법이든 괜찮습니다. 인간이 여기에 도착한것에 감사의 기도를 해 주십시오. 제발 용서하시고 동정해 주십시오 그리고 죄 많은 역사의 끝에 인간이 뻗어나갈 하나의 벌을 지켜주십시오.'

'신의 가르침을 들으세요'
거리에서 리크니가 변함없이 전단을 돌리고있다. 전단을 돌리는 리크니의 손에 눈이 내린다. 하늘을 올려 다 보는 리크니의 머리 위 저편 어딘가 수많은 별들과 함께 시로크가 떠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정치가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철저히 희생당하는 인간의 가치를 묻고, '인류의 문명이 전쟁을 낳는 것인가, 전쟁이 문명을 낳은 것인가' 라는 딜레마를 던진다. 그것은 오네아미스의 문제이면서 곧 우리의 문제다.
영화는 리크니의 되찾은 미소와 시로크의 기도로 끝을 맺는다.

'불'이 인류에게 죄악의 원인이면서 또한 문명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유인 우주선'은 전쟁의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인류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기도 한 것이다. 시로크의 기도 역시 신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지상의 인류를 향한 기도라 할 수 있다
.
왕립 우주군은 비로소 자신들만의 신념과 의지로 인류의 희망을 짊어지고 우주로 웅비하는 진정한 오네아미스의 날개가 된 것이다. 불을 제대로 사용해서 인류의 날개를 달자는 '왕립 우주군'의 메시지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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