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날은 장거리, 습한 날은 단거리에 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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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육상은 자신과 싸움이자 외부조건과의 투쟁이다. 황영조 본지 객원전문기자(대한육상경기연맹 마라톤·경보 기술위원회장)는 “대회를 앞두고 단거리·필드 선수들은 날씨가 덥길 바란다. 반면 장거리·마라톤 선수들은 서늘하길 기원하며 하늘을 바라본다”고 전한다. 같은 날씨라도 종목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단거리 종목에서 초속 2m 이상 뒷바람의 도움을 받았을 때는 공식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해발고도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고지대에서 세운 기록은 고지대에서 달성한 것임을 표시해둔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바람과 기온, 습도와 기압까지 0.01초를 다투는 단거리 경기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2005년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 생물역학학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기온과 습도가 높고 기압이 낮을수록 단거리 선수에게 유리하다. 공기의 밀도가 낮아져 저항이 덜 생기기 때문이다. 이 학회는 해발고도에 대응하는 ‘밀도고도’란 개념을 창안했다. 기온과 습도, 기압의 상황에 따라 평지에서 뛰어도 고지에서 뛰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개념이다.

 기상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100m 결승에 나설 28일의 최근 10년간 평균기온은 25.1도, 기압이 1009.7 h㎩, 습도가 79.1%다. 대구스타디움의 해발고도는 110m다. 뒷바람을 초속 0m로 가정하고 이 수치를 클리블랜드주립대 생물역학학회가 제시한 수식에 넣으면 밀도고도 627m로 볼트는 0.001초도 이득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올여름은 비가 잦다. 특히 남부지방에는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은 8월 하순 대구의 강우 확률과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예보했다. 뒷바람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볼트는 상황에 따라 0.01~0.02초까지 기록 단축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볼트만 누리는 효과는 아니다. 공기의 밀도가 낮아지면 스피드가 중요한 중·단거리 트랙종목은 물론 도약종목(높이뛰기·멀리뛰기·세단뛰기)과 투척종목(창·포환·원반·해머던지기) 선수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장거리 트랙종목과 마라톤·경보 선수들에게 덥고 습한 날씨는 재앙과 같다. 황영조 객원전문기자는 “기온과 습도가 높으면 땀이 많이 배출된다. 장거리, 특히 마라톤 선수들에게 수분 공급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수분이 빨리 빠져나가면 계획했던 페이스대로 뛰기 어렵다”고 밝혔다. 세계 마라톤 기록의 산실인 보스턴, 베를린마라톤대회가 선선하고 건조한 지역의 4월과 9월에 열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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