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 열풍에 가려진 기업 윤리의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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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개 정상적인 분위기에서라면 방만하고 비윤리적이거나 불법적으로 보였을 관행도 호황기에는 숨기고 용인하게 마련이다. 경제에 대한 그런 방종에 가까운 확신이 호황기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게다가 인터넷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다줌으로써 경제적인 성공을 도덕적인 완성으로 착각할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런 추세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바로 인간의 본성 자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유수의 소프트웨어 회사 마이크로스트래티지社 문제는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지난 3월 20일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1999년 결산 보고서를 수정중이라고 발표했다. 2억5백만 달러였던 매출액이 약 1억5천만 달러로 25% 정도 줄어들며, 15센트로 발표된 주당 순이익이 43∼51센트의 손실로 바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발표가 나가자마자 2백26.75달러였던 주가는 86.75달러로 62%나 급락했다.

주주들의 소송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에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앞으로 해명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그들이 금융 사기단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보수적인 회계규정의 피해자인지는 아직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래티지 회장은 “우리쪽 실수가 아니라 회계규정이 첨단기술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어떤 결말이 나든 이번 에피소드는 첨단기술 열풍이 윤리적인 딜레마를 초래했음을 시사한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믿는 것과 사람들의 경제적 이해를 충족시키는 것 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회계법규를 확대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더 미묘하고 모호하며 확산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증권인수 관행, 증권사 ‘리서치’의 독립성, 스톡 옵션(주식 매입 선택권)의 사용을 둘러싸고 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주식공모(IPO)의 예를 살펴보자. 이 사업은 인수업체(판매업무를 맡는 증권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가령 후피!.컴이 1억 달러 상당의 주식을 공모한다고 치자. 플로리다大 재무학 교수 제이 리터에 따르면 인수업체의 수익률은 통상 7% 정도다(7백만 달러). 그렇다면 누가 후피!컴을 사겠는가.

그러나 그 인수업체가 인기 주식 분석가를 두고 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의 추천 한 마디로 주가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인터넷 분석가는 모건 스탠리 딘 위터社의 메리 미커다. 1999년 그녀의 수입은 약 1천5백만 달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그렇게 많은 보수를 받은 것은 많은 인수업무를 따내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톰슨 금융증권 데이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 모건의 IPO 인수총액은 약 1백40억 달러로 골드먼 삭스(1백45억 달러)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리터는 “주식 분석가의 직분과 회사의 이해관계가 크게 상충된다”고 말했다. 주식 분석가들의 ‘치어 리더’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보수는 회사의 인수실적에 따라 좌우되며, 인수실적은 낙관적인 리서치 보고서에 따라 좌우된다.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인터넷 분석가는 외면당한다.

자본주의에는 위험과 보상이 따른다. 회사가 망하는가 하면 실패하는 사업계획도 있다. 닷컴 현상도 다를 바 없다. 자본주의가 기능을 발휘하려면 합당한 수준의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가 왜곡되면 위험과 보상의 등식도 왜곡된다. 그 논리에 따르면 IPO 인수기준은 약화됐으며 실제로도 그렇다. 1996년 넷스케이프의 IPO 전까지만 해도 공모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수익성이 있었다고 펜실베이니아大의 제레미 시겔 교수는 말했다. 지금은 대다수가 적자기업이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연륜이 짧기 때문이다. 1995년 IPO 기업의 평균 나이는 8.1년이었던 반면 1999년에는 5.2년으로 줄었다. 그것은 창업투자사와 회사 창업자들에게는 천우신조의 행운이다. 자본 회수기간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수업자들에게도 횡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흥행사들이 향후 수익성을 의심하면서도 주식공모를 추진하는 회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조만간 일부 투자자는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 ‘사기’란 말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그런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일례로 ‘스톡 옵션 남용’이 회사의 부를 축냄으로써 주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것은 비즈니스 문제일 뿐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그 답변도 쉽지 않다.

호황중에는 거의 대다수가 도덕적 해이 등 방종에 대해 관용을 베푼다. 손해를 보는 사람보다 이익을 보는 사람이 많다. 기쁨의 환호가 불만의 소리를 덮는다. 그러나 호황이 가라앉으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실망과 손실이 누적된다. 돈을 잃은 사람들은 수익을 올린 사람들이 모두 가져간 듯이 보인다. 쌍방간 비난의 소리가 커진다. 미국의 1920년대 주식투자 열풍과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 스캔들, 최근 일본의 ‘거품 경제’ 등도 그런 사이클을 따랐다.

호경기 때는 사람들이 훗날 옳지 않은 듯이 보이는 일들을 하기도 한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사태는 일과성일 수도 있지만 더 큰 심판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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