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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열전02] “축구 종가의 태양은 지지않는다” 마이클 오웬(Michael James Owen)

중앙일보

입력

프랑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98월드컵에서 전세계 축구팬을 사로잡은 잉글랜드 선수가 있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16강전, 전반 16분 경 데이비드 베컴의 패스를 받은 이 선수는 순식간에 수비수 두 명을 돌파해 멋진 중거리 슛을 성공시켰다. 이 순간 축구 팬들은 수년 내에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을 새로운 스타가 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이클 오웬(Michale Owen, 21). 당시 19살로 최연소 출전 선수였던 그는 이렇게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며 세계 무대에 첫 발을 디뎠다.

1979년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오웬의 아버지 역시 축구 선수였다. 아버지인 테리 오웬은 리버플 축구 학교 출신으로 애버튼(Everton), 체스터 시티(Chester City), 캠브리지(Cambridge), 호취데일(Rochdale), 포르트 베일(Port Vale) 등 여러 팀에서 활약하며 총 299경기에 출전, 70골을 넣은 프리미어(Premier) 리그 선수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오웬은 7살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오웬이 어린 시절부터 공 차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스파이크를 신고 처음 시합을 한 이후로 축구이외에 아무것도 흥미가 없었다고 본인 스스로 말할 정도다.

어린시절 오웬은 축구를 좋아하는 다른 평범한 선수들과는 달리 유명 선수들의 포스터를 방에 붙이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밖에 나가서 시합하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 그런 오웬에게 처음으로 우상으로 다가온 사람은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게리 리네커였다.

리네커를 보며 잉글랜드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던 오웬은 자신의 꿈을 서서히 실현시켜 나갔다. 그는 1990/91시즌 U-11 리그에서 79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이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 첼시(Chelsea) 등 프리미어 명문 팀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한 프리미어 팀들간의 경쟁에서 승리한 팀은 전통적인 명문 클럽인 리버플. 오웬은 그의 17번째 생일인 1996년 12월 14일 리버플과 유스 플레이어로서 계약을 맺었다.

이후 리버플은 단 한번도 오웬과 계약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96-97시즌 리버플 유스 멤버로 경기에 나선 오웬은 불과 5경기에서 11골을 넣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이며 팀에 FA 유스컵과 함께 굳은 신뢰를 심어주었다.

96-97 시즌 종반, 오웬은 드디어 프리미어 리그에 첫 선을 보였다. 97년 5월 6일 영국의 축구 팬들은 자신들의 만든 유소년 축구 육성 시스템을 훌륭히 소화한 한 젊은이의 등장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윔블던과의 원정경기에서 교체멤버로 그라운드에 나선 오웬은 갈고 닦은 득점력을 선보이며 멋진 골을 팬들에게 선사했다. 동시에 이 골은 리버플 역사상 최연소 득점자의 이름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이후 오웬은 각종 최연소 기록들을 계속 경신해 나갔다. 리들레, 로비 파울러 등 리버플 공격수들의 부상이 오히려 그에게는 기회가 되어 팀에 합류한지 일년 만에 주전 공격수 자리를 차지했다. 역시 가장 어린나이로 잉글랜드 대표팀에 합류했고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최연소 국가대표 득점을 기록했다.

다시 자국리그로 돌아온 오웬. 프리미어 리그 데뷔 후 두 번째 맞이한 97-98시즌에 그는 35경기(교체 출전 2경기 포함)에 출전해 무려 18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다. 시즌 중반 노팅햄 포레스트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4골을 넣어 또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그는 대회 최연소 득점 기록을 세우고 팀 내 최다골(3)을 기록했다.

이런 오웬의 눈부신 활약은 유럽의 유명 클럽들에게 엄청난 유혹이었다. 팀에 승리를 안겨주는 선수, 엄청난 상품성과 장래성을 지닌 젊은 유망주에게 이탈리아 세리아의 명문팀 라치오(Lazio)는 무려 2,500만 파운드(한화로 약 450억)의 이적료를 제시했다. 그러나 2005년 여름까지 오웬과 계약한 리버플 역시 오웬이 그만큼 상품가치가 높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결국 한차례 풍문으로 끝났지만 산술적으로 오웬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있는 계기였다.

새 천년 최고의 유망주로 인정받으며 맞이한 98-99시즌. 17골을 넣으며 승승장구하던 오웬에게도 시련은 다가왔다. 경기 도중 오금 근육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어 일부에서는 선수 생활 자체가 위험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러나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오웬은 99-2000시즌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아직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아 전 경기를 소화하지는 못하지만 소속팀은 물론 잉글랜드 대표팀은 그의 복귀 소식만으로 충분했다. 6월에 열린 EURO 2000대회와 2002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에서 영원한 맞수 독일과 같은 조에 편성된 잉글랜드는 부상중이라도 오웬이라는 카드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일 것이다.

더군다나 올 초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이며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해 온 앨런 시어러(Alan Shearer, 30)가 유럽선수권대회 이후에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고 말해 오웬의 존재는 더욱 중요해졌다.

축구선수로는 왜소한 체구지만 재빠른 몸놀림과 방향전환, 화려한 돌파력을 지닌 오웬. 한국의 축구팬들이 그의 모습을 2002 월드컵에서 볼 수 있을 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오웬은 분명히 차세대 축구 스타의 자리를 예약한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새 천년 ‘태양이 지지않는 나라’ 영국 축구의 새로운 ‘태양’은 오웬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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