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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술 한해 1200건, 진료 대기 2년 … 대한민국 명의 7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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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휴, 진이 빠지네요. 젊을 때는 괜찮았는데….”

 8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오전 9시에 외래(外來)진료를 시작한 이원상(60·이비인후과) 교수는 “환자들이 저를 사랑해서 오셨기 때문에 힘을 낸다”고 했다. 그는 밀려드는 환자 때문에 오후 5시에야 점심을 먹었다. 그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1년, 수술은 2년을 기다려야 한다. 20년째 대기 줄이 이어지고 있다. 이 교수는 뇌종양의 일종인 두개저(頭蓋底:머리 밑바닥)종양 전문가다. 그는 “대개 악성이 아니어서 당장 생명에 영향을 주지 않아 기다리다가 수술을 받아도 별문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8~9건의 수술을 한다. 수술실에서 2∼3일 보낸다. 수술이 고난도여서 새벽까지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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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가 지난달과 지난해 1월 두 차례 삼성서울·서울대·서울성모·서울아산·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외래진료와 수술 대기기간이 가장 긴 의사를 조사했다. ▶세브란스병원 이원상 교수 ▶서울아산병원 이춘성(55·정형외과) 교수 ▶서울성모병원 박형주(54·흉부외과) 교수는 수술과 외래 모두 대기기간이 가장 길었다. 특히 세 사람은 지금 예약하면 2년을 기다려야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외래 대기기간이 가장 긴 의사는 정진상(55·신경과·7주 대기) 교수, 수술은 하철원(47·정형외과·1년) 교수다. 서울대병원은 외래 이상철(58·마취통증의학과·1년) 교수, 수술은 윤여규(62·외과·6개월) 교수다. 본지는 5대 병원에서 대기기간이 가장 긴 7명의 명의(名醫)를 집중 분석했다.

 진료 대기기간이 명의의 절대 기준은 아니지만 많은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경험이 풍부해져 진단의 정확성과 수술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의료계의 정설이다. 보건복지부가 심혈관 질환이나 응급실 운영 등을 평가해 병원 등급을 발표하고 있을 뿐 의사 실력을 알려주는 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다 보니 입소문으로 의사 실력이 알려지고 환자가 몰리면서 대기기간이 명의의 간접 척도로 통하는 것이다.

 본지의 두 차례 조사에서 세브란스 이원상 교수와 서울아산 이춘성 교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1년 반 사이에 바뀌었다. 지난해 1월 조사에서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백구현(54·선천성 어린이 손 기형 전문) 교수가 수술 대기기간이 3년으로 모든 병원 중 가장 길었다. 그 이후 같은 전공 의사가 충원돼 1년으로 줄었다.

 의료 분야에서는 임상(臨床)경험이 중요하다. 명의 7명 중 6명은 50~60대 베테랑이다. 삼성서울병원의 하철원 교수가 유일한 40대다. 이들은 실력은 기본이고 사생활을 희생할 정도로 진료에 열정적이다. 환자와 많이 대화하면서 교감하고 신뢰를 쌓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명의들의 첫째 조건은 역시 실력이다. 서울아산병원 이춘성 교수는 척추측만증(脊椎側彎症: 척추가 옆으로 심하게 굽은 증상)이 전공이다. 1990년에는 한 건 수술에 8시간 이상 걸렸으나 지금은 1시간30분이면 끝낸다. 서울대병원 윤여규 교수는 갑상샘암 수술을 하면서 목에 흉터를 남기지 않고 양쪽 겨드랑이·가슴 부위를 0.5㎝가량 절개하는 수술로 유명하다.

 환자가 많아 10년간 휴가를 못 가기도 한다. 이춘성 교수와 서울성모병원 박형주 교수가 그렇다. 이 교수는 “초·중·고생 환자가 대부분이어서 방학 때가 더 바쁘다. 이때는 매주 5일(월~금) 수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척추측만증 환자 164명을 수술했다.

 명의가 자리를 옮기면 환자들도 따라간다. 서울성모 박형주 교수는 올 3월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옮겼다. 그의 전공은 가슴 앞부분이 안쪽으로 들어간 선천성 기형(오목가슴) 수술. 고려대병원을 오가던 환자들 대부분이 박 교수를 따라왔다. 그는 99년 국내 최초로 가슴 한쪽에 1㎝의 흉터만 남기는 수술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1700명에게 새 삶을 주었다. 그는 “국내 오목가슴 수술(300여 건)의 70% 이상은 내가 한다”고 말했다. 고1 정모군은 “가슴뼈가 가라앉은 오목가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다. 2년을 기다려도 박 교수에게 꼭 수술을 받겠다”고 말했다.

 7명의 의사 중 최연장자는 서울대병원 윤여규 교수다. 갑상샘암 수술 대가인 그는 매주 4일, 24건을 집도한다. 그는 “한 해 1200여 명을 수술하는데 70~80%는 절개이고 나머지는 최첨단 로봇수술”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외래에서 대기 줄이 가장 긴 의사는 마취통증의학과 이상철 교수. 그를 찾는 환자는 대상포진(帶狀疱疹:몸의 좌우 한쪽 신경에 수두나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감염돼 생기는 병)이나 척추 수술 뒤 통증이 재발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교수는 환자들이 치료 시기를 놓칠까 걱정한다. 그는 “통증 치료의 비방은 없다”며 “증상이 심하면 다른 의사를 찾아달라”고 했다.

 삼성서울병원 하철원 교수는 47세로 가장 젊다. 국내 스포츠의학의 창시자이자 이 분야 명의로 통했던 고(故) 하권익(전 삼성서울병원장) 박사의 아들이다. 부자(父子)가 모두 명의로 부전자전(父傳子傳)이다. 하 교수에게 무릎관절경 수술을 받으려면 내년 6월까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려면 7~8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삼성서울병원 외래 진료는 신경과 정진상 교수가 환자가 가장 많다. 난치성 두통과 뇌졸중 환자를 주로 본다. 그는 “두통은 국내에 500만 명의 환자가 있고 이 중 10%는 잘 낫지 않아 어느 병원이나 환자가 밀려 있다”고 설명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외래·수술 대기=당일 진료가 예약된 병원에서 환자가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대기(待機)다. 본지가 조사한 5대 병원의 외래(外來:입원하지 않고 통원 치료)와 수술 대기기간은 환자가 진료나 수술 접수를 마친 뒤 해당 의사로부터 초진(初診:첫번째 진료) 또는 수술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기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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