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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talk ⑪ 뮤지컬 배우 남경주의 ‘가오리 조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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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제가 뮤지컬 배우이다 보니 특별한 목 관리 방법이 있느냐 물어보시는 분이 많은데, 따로 특별한 건 없어요. 목은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잠 잘 자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특히 그 상황에 맞게 진심을 담아 목을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기초체력이 필요하죠. 목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 먹기보다는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편이에요. 하지만 오래된 사연이 있는 생선 음식만은 종종 찾아 먹곤 하죠.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생선 장사를 하셨어요. 어머니는 생선을 사 오면 좋은 생선은 자식들 먹이시려고 안 팔고 빼두시곤 했어요. 그런 어머니 덕분에 고등어·삼치·서대·민어 등 다양한 생선 조림을 먹었죠. 경상도식 요리를 하셨던 어머니는 무와 감자를 밑에 깔고 양념간장을 생선 위에 뿌린 다음,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생선 조림을 만드셨어요. 그렇게 매콤한 경상도식 생선조림이 완성되면 진수성찬이 차려진 날이라 형제들끼리 둘러앉아서 서로 먹겠다고 싸우고는 했죠. 그래서 생선조림을 볼 때마다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고향이 생각나요. 그래서 저에게 생선조림은, 고생 많았던 어머니를 생각하게 하는 특별한 음식입니다.

 아무튼 어렸을 때 생선이란 생선은 다 먹어봤어요. 그중에서 생각나는 건 얇고 가자미 같이 생겼는데 가자미보다는 작고 눈이 옆에 있는 서대(박대)라는 생선이에요. 주로 반건조를 해 구워 먹는데, 반건조를 한 서대로 찜요리를 해먹어도 정말 맛있어요. 도루묵은 구워서 먹기도 하지만 조림을 해 먹으면 더 맛있어요. 겨울엔 알이 밴 도루묵을 먹을 수 있었어요. 도루묵 알은 씹으면 젤리처럼 톡톡 터지는 맛을 느낄 수 있죠.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생선 요리는 가오리예요. 가오리는 비싸다기보다 흔치 않은 음식이라 자주 먹지는 못했어요. 생선을 날 것 그대로 찌면 흐물흐물하고 맛이 없게 마련인데, 반건조 상태의 가오리를 양념장해 찜통에 넣어 찌면 정말 맛있고 쫄깃쫄깃한 식감의 가오리 요리가 탄생하죠. 옛날 그 맛이 생각이 나 아내에게 몇 번 요리를 해준 적이 있는데 항상 실패했어요. 물의 양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다시 한번 생각이 납니다.

 맛은 참 오묘한 것 같아요. 입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곱씹는다’는 표현처럼 추억도 맛인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그런 추억을 맛보고 싶어 지방 공연을 가면 말린 생선을 사가지고 와 집에서 쪄 먹어요. 반건조 가오리를 찢으면 쫄깃쫄깃한 맛과 물렁뼈에서 씹히는 맛까지 느낄 수 있어 맥주 안주로 최고예요.

 어머니가 생선 장사를 하셔서 사실 저에겐 생선에 얽힌 가슴 아픈 사연이 많아요. 명절 때 먹는 동태전 있잖아요. 그거 참 맛있고 담백한데, 저는 동태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옛날 어머니는 명절 때마다 동태 포를 떠서 봉투에 넣어 팔곤 하셨어요. 꽁꽁 언 동태포를 뜰 때마다 어머니 손에 잡힌 물집과 까진 상처는 심해졌어요. 동태전을 보면 저는 상처투성이였던 어머니의 손이 생각이 나요. 이런 기억도 있네요. 부끄러운 기억인데, 저는 어머니가 생선 장사를 하는 게 창피해 중학교 때는 어머니 옆에 잘 가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 철이 들었는지 고등학생이 돼서는 그러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제가 곁에 다가갈 때마다 공부하라는 말만 하셨지요. 생선 얘기만 하면 어머니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지금도 어쩔 수가 없네요.  

정리=손민호 기자

남경주는 … 1964년 경북 문경 출생.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이자 뮤지컬 연출가다.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 수상 등 수많은 수상 기록을 자랑한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했고 82년 연극 ‘보이체크’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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