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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시대엔 예술강국에서 경제강국 나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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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호 24면

Q.국악인에 대한 후원도 AQ(ArtisticQuotient·예술가적 지수) 경영의 일환인가요? 사회공헌 활동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까? 조각가는 왜 지원하나요? 이런 활동이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나요?

경영 구루와의 대화<8>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⑤ <끝>

A.전체 국민의 AQ를 향상하면 국가적으로도 이롭습니다. 앞으로 국가 경쟁력은 국민의 높은 AQ에서 나온다고 확신합니다. 우리 국민의 AQ를 높여 보려고 우리가 선택한 것이 음악에서는 국악, 미술에서는 조각입니다.

우리 국악은 크게 정악과 민속악으로 나눕니다. 정악은 일부 궁중음악을 포함해 과거 상류층이 연주하던 음악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정악은 양반의 음악이고, 민속악은 서민들이 생활 속에서 즐기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정악은 세종대왕이 정리했고 그 후로 500년 이상 꾸준히 정제돼 왔습니다. 오랫동안 음악을 잘 아는 사람들이 다듬어온 것이라 정악은 사실 서양 고전음악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설명할 능력은 없지만 저는 우리 국악이 대외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많은 외국인이 우리 가락을 좋아합니다. 세계 어디 가서도 들을 수 없는 소리이지 않습니까.

우리 국악기도 결코 서양 악기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단소나 소금은 피콜로 소리를 능가합니다. 대금 소리는 흉내낼 수 있는 서양 악기가 딱히 없어요. 이런 소리는 전자악기로도 똑같이 만들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이런 한계가 우리 국악을 세계화하는 데 걸림돌이 될는지도 몰라요.

한식 세계화를 우리 정부가 지원하고 있지만 저는 국악도 세계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자면 서휘태 지휘자의 아이디어대로 외국의 유명 작곡가에게 의뢰해 우리나라 음악, 우리 가락을 집어넣어 곡을 만들게 해야 합니다. 우리 소리를 삽입해 각별한 흥이 나는 아주 특별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거죠. 그래서 세계 각국의 오케스트라들로 하여금 이 곡들을 연주하게 하는 겁니다. 그가 저서에서 이런 제안을 한 것을 보고 저는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정작 우리 국악 작곡가가 만들면 글로벌한 음악이 되기 어렵습니다. 비유하면 옷을 갈아입고 세계 무대에 뛰어드는 겁니다.

그의 말대로 저는 이것이야말로 국악의 세계화라고 봅니다. 한류 가수들이 흔히 작곡을 외국 사람에게 맡기는 것과 같은 원리죠. 그 전까지 저는 우리 국악단을 해외에 데리고 나가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휘태 지휘자는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김명민이 연기한 강마에의 모델로 잘 알려진 분이죠.

조각도 범위가 넓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움직이는 조각(모빌)에 주목했습니다. 조금 더 세분하면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모빌 분야를 선택해 이쪽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조각계에서 톱이 되려면 다른 나라가 많이 하지 않는 이 움직이는 예술(Kinetic Art)에 투자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대 조각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로댕의 작품이 조각 예술의 정수였습니다.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같은 로댕의 작품은 그냥 뒷짐 지고서 보면 됩니다. 이런 작품은 한낮이나 석양이 질 때나 그 앞에 선 채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은 감상 시각(뷰포인트)이죠. 이제 조각은 움직여야 합니다. 작품 자체가 감상자와 상호작용을 해야 합니다. 조각 작품이 감상자에게 반응하는 겁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반응을 보이는 조각과 돌부처처럼 무심한 조각 중 어느 쪽을 사람들이 선호하겠습니까. 앞으로는 조각가도 이런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래야 작품을 만들 기회, 자기 표현을 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저 혼자 자기 만족을 추구해서는 도태되고 맙니다.

아트밸리엔 4명의 조각가 등 젊은 예술인 10여 명이 입주해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작업을 하는 아틀리에는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모텔들을 사들여 이런 용도에 맞게 개조했는데 입주작가 레지던스로 쓰는 한편 만인에게 열려 있는 갤러리도 운영하고 있죠. 조각가에게 제공한 공간이 스튜디오 준, 락음국악단이 쓰는 곳이 우리가락 배움터입니다. 우리가락 배움터는 말 그대로 대금·장구 등의 악기를 배울 수 있는 문화체험 공간이죠. 여기서 흙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국악기 ‘훈(塤)’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흙으로 만드는 만큼 만들고 나서 초벌구이, 시유, 재벌구이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되죠.

여담이지만 이런 용도로 우리가 사들인 모텔에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도 입주해 있습니다. 우리가 최장 1년간 거주하는 조건으로 100여 명을 초청했습니다. 아직은 몇 가구 안 됩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국악인과 조각가의 창작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원하는 국악인들이 바로 크라운해태의 국악 오케스트라 락음국악단이죠. 락음국악단은 국악을 대중화하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정기연주회를 열고 전국 순회공연도 펼치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는 국내 최정상급의 국악 명인을 초청해 대보름 명인전도 엽니다. 올해는 네 차례 열리는데 지난 2월엔 국회 의원회관에 무대를 꾸몄습니다. 이런 무대를 꾸준히 마련하는 건 우리 소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한편 우리 국민의 AQ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창신제는 기업이 주관하는 국내 유일의 종합 국악 공연입니다. 국악에 대한 후원이 미미한 실정에서 창신제는 국악인들이 모처럼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는 무대죠. 창신제는 신구 세대가 어우러질 수 있는 퓨전 국악 한마당입니다. 비보이와 힙합 팀, 어린이합창단도 무대에 섭니다.

이런 지원을 하다 보니 저 자신도 국악과 조각이 친숙해졌습니다. 꼭 잘 아는 분야 같고, 관심을 갖다 보니 실제로 이들 분야에 눈뜨게 됐죠. 또 잘 모르면 입주 작가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돼요. 우리가 후원하는 사람들이니 이들도 돈 안 받고 잘 가르쳐 줍니다. 말하자면 프로페셔널들을 우리가 사부로 모시고 있는 셈이죠. 우리 직원들의 창작품엔 알게 모르게 이들 전문작가의 아이디어가 스며 들어 있습니다. 직원들의 작품이 범상치 않은 건 사실 이렇게 고수들의 훈수를 들었기 때문이에요. 이들 덕에 직원들의 AQ가 높아진 것이죠.

어쨌거나 이런 내력이 있어 국악이나 조각 하시는 분들도 크라운해태에 대해 우호적입니다. 자체적인 행사를 할 때도 우리 제품을 선호합니다.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죠. 이른바 감성의 시대엔 예술 강국이라야 경제 강국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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