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1000조원 고지’를 지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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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사흘 만에 하락 … 1800선 깨져 12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딜링룸의 전광판 앞에서 외환딜러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있다. 이날 상승세로 출발했던 코스피지수는 등락을 거듭하다 전날보다 24.13포인트 내린 1793.31에 장을 마감했다. [AP=연합뉴스]


코스피 시장은 며칠째 1800선을 놓고 지루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12일에도 오름세로 출발했으나 공방 끝에 전날보다 24.13포인트(1.33%) 내린 1793.31에 장을 마쳤다. 요철(凹凸)을 달리듯 출렁이는 지수 뒤편에선 숨가쁜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외국인투자자 대 개인투자자-연기금 연합. 2일부터 본격화한 외국인투자자의 ‘셀 코리아’에 맞서 개인투자자와 연기금은 전력을 다해 방어전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은 살벌한 전장으로 변했다. 전투는 치열하다. 시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방향을 바꾸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1800선을 앞에 두고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코스피지수 1800은 시가총액 1000조원을 의미하는 숫자다. 1년 전인 지난해 8월 한국 주식시장은 3대 고지를 향해 질주했다. 코스피 1800과 시가총액 1000조원, 주가수익비율(PER) 10배였다.


 최근의 급락장에서 PER 10배는 이미 깨졌다. 아슬아슬하게 지켜냈던 1800선도 12일 무너졌다. 이날 1013조원을 기록한 시가총액은 이제 국내 증시가 지켜야 할 마지막 고지가 됐다. 한때 코스피지수가 2200대까지 치솟으며 시가총액은 1216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외국인투자자의 ‘한국 탈출’ 행렬에 시총은 순식간에 1000조원 가까이로 내려앉았다.

 연기금과 개인의 총력전에도 시가총액 1000조원을 지켜내기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유럽계 자금이 주도하는 외국인의 ‘셀 코리아’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은 12일 외국인의 예상 가능 매도액을 6조~6조5000억원으로 추정했다. 이재훈 연구원은 “2~12일 외국인이 보유 주식의 1.5%가량을 팔았고 이는 2008년 10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의 매도 규모(1.8%)에 근접하고 있다”며 “당시와 같은 수준으로 주식을 팔게 된다면 아직 1조5000억~2조원의 매도 여력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리먼 사태 때보다 더 강한 ‘팔자’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국인의 ‘셀 코리아’가 클라이맥스(정점)로 다가서며 주가도 가파른 속도로 내려앉을 수도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상황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적극적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개인과 함께 연기금이나 정부산하 기관이 2002년 이후 최대 수준의 ‘바겐헌팅(저가매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2~12일 외국인이 던진 5조8490억원의 주식 중 개인이 2조841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연기금이 받아낸 물량도 2조504억원에 이른다.

 한국투자증권 유주형 연구원은 “구원투수를 자처하는 연기금이 주식 투자 비중을 확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근거는 세 가지다. 우선 국민연금의 자산 규모가 지난 5월 현재 340조원을 돌파하면서 적정 수익률 달성을 위해 투자 자산을 다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해 주식 투자 비중 목표치(18%)도 지난해(16.6%)에 비해 늘어나는 등 주식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10년 동안 연기금이 9~12월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을 감안하면 하반기에도 ‘사자’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다.

 각국 증시 중 낙폭이 가장 컸던 탓에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주가도 반등에는 ‘우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표 종목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수준까지 내려가면서 막연한 공포심에 사로잡혔던 투자자들이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할 것이란 설명이다. 동양종합금융증권 이재만 연구원은 “국내 증시의 현재 가격 수준은 기업 가치나 경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싸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저가 매수세를 바탕으로 한 반등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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