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emerge]4·13 총선과 황무지의 노래

중앙일보

입력

4월은 잔인은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우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4월 총선의 문턱에서 문득 T. S. 엘리엇의 ‘황무지’가 연상되고 있다. 새 봄의 햇살, 진달래, 개나리, 동백꽃들이 개화하면서 녹음방초 피어나는 4월은 생명의 달이 아닌가. 모든 것이 화창하게 다가오는 4월에는 한식이 있고 크리스찬들이 기리는 부활절이 있으며, 한국민주주의의 상징인 4·19혁명이 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처럼 정치적 삶이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4월은 우리 시민들에게 새천년 의회정치의 가능성을 가늠케 하는 선택의 달이기도 하다.

그런 4월이 왜 잔인한가. 물론 유권자들의 신임을 얻고자 죽기 살기로 온 동네를 누비며 경쟁자들과 다투어야 하는 4월은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계절이 아닐 수 없다. 공천에 떨어져 정계은퇴를 선언해야 했던 사람들, 정치 브로커에 걸려 정치의 쓴맛을 견디지 못하고 공천을 반납해야했던 사람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운동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도 더없이 잔인한 달이다. 그렇다면 승리자에게 4월은 환희의 달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4월은 아름다우면서 고통스러운가. 혹은 환희로우면서 암울한가? 아니다. 4월의 잔인함에는 그 이상의 신비스러움이 배어있다. 정치인들이 당의 공천을 땄건, 따지 못했건, 선거에서 이겼건, 졌건, 시민들이 선거에 참여했건, 불참했건, 총선의 4월은 우리 모두에게 잔인한 달이다. 실상 민주화는 이루어졌건만, 우리는 명실상부한 민주시민보다는 지역정당은 있되 전국정당은 없으며, 보스는 있되 당원은 없고, ‘건물국회’는 있되 입법자의 고뇌가 서려있는 ‘입법국회’는 없는, 황무지의 주민으로 살아왔다. 稅風·銃風·植物國會·防彈國會, 이삭줍기, 정치9단 등, 국어 사전에도 없는 수많은 정치 造語들이 난무하고 있는 곳, 민주주의가 살아 꿈틀거리지 못하고 의회정치와 정당민주주의가 자랄 수 없는 황무지가 우리의 정치현실이다.

이러한 황무지의 상황에서 선거에서 이긴들 어떻고, 진들 어떻겠는가. 새로 지은 당명이 민주당이면 어떻고, 민주국민당이면 어떻겠는가. 어차피 앞으로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이합집산의 과정을 거치며 수없이 명멸할 泡沫정당의 하나인 것을. 특정인들이 수십 년간 不死鳥처럼 지역정치의 터줏대감으로 버티고 있고 권력이 삼권으로 분립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분립되는 희한한 상황에서 한국의 선거민주주의는 귀납으로 풀 수도 없고 연역으로 풀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민주주의임에 틀림없다. 한국민주주의는 익기도 전에 너무 시어서 사람은 물론, 여우조차 맛이 없다고 투덜대며 물러가는 포도처럼 불모의 민주주의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겨울이 차라리 따스했거니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
메마른 구근으로 작은 목숨을 이어 주었거니.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하며 ‘겨울 공화국’에 안주한 채 삶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선거의 계절이 환희의 계절도 아니고 승부의 계절도 아니며, 각성의 계절로 다가와야 하는 이유이다. 보이지 않는 민주주의의 숨길들이 약동하고 있는 이 시기에 忘却의 늪에 파묻혀 민주주의는 으레껏 지역주의의 모습이려니 혹은 名士들의 전유물이려니 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선거의 계절은 각성을 요구하는 잔인한 계절이다. 생명의 숨결이 못내 부담이 되어 황무지의 주민으로 남아 있고자 하는 사람에게 봄이 잔인한 것처럼, 민주주의의 본질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반추하기를 주저하는 사람에게 선거의 계절은 잔인한 계절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선거의 계절을 맞이하여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도 전례없이 고조하는 등, 싹터 오르는 민주주의의 숨길들은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황폐한 땅에 파묻혀 왔었는지를 반증하고 있다. 이제 우리 민주주의가 얼마나 ‘나’를 대변하지 못하는 불모의 민주주의로 변하였는지 그 편린들을 모아보기로 하자.

계속(http://emerge.joins.com/200004/200004_072.asp)

박효종 /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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