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프랑스 쇼크 … 사르코지 “일주일 내 대책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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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파리 쇼크’였다. 11일(현지시간)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즈음 프랑스 증권가엔 흉흉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미국에 이어 프랑스가 곧 ‘트리플 A’ 신용등급을 잃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었지만 ‘검은 월요일’을 겪은 증시는 예민했다. 불똥은 바로 소시에테제네랄은행(속젠)으로 튀었다. 속젠은 지난주 그리스에 물린 채권 3억9500만 유로를 손실 처리하는 바람에 2분기 순익이 1년 전보다 31% 줄었다는 실적을 발표한 터였다. 게다가 아직도 그리스 채권을 26억5000만 유로나 보유해 내년에도 수익 전망이 어둡다는 분석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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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문은 삽시간에 공포로 탈바꿈해 투매를 불렀다. 속젠 주가는 두 시간여 만에 23%나 미끄러졌다. 덩달아 프랑스와 영국 은행의 주가도 줄줄이 곤두박질했다. 파리 증시의 지수가 5% 넘게 추락한 것을 비롯해 영국·독일·이탈리아 증시도 3~6% 급락했다. 프랑스 국채의 부도에 대비해 드는 일종의 보험수수료인 신용부도스와프(CDS)는 단번에 4bp(1bp=0.01%포인트) 오른 165bp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은 물론 페루·인도네시아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사정이 다급해지자 휴가 중이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급거 귀경해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사르코지는 “일주일 안에 추가 재정지출 감축계획을 제출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7.1%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을 2013년까지 3%로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시장이 이를 의심하자 추가 감축계획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미국 신용등급을 깎았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를 비롯해 무디스·피치도 거들었다. S&P는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미국보다 심각하지 않은 데다 이를 해결하려는 정치권의 의지도 강하다”며 “트리플 A 등급 유지가 안정적”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시장의 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유럽에 이어 개장한 뉴욕 증시도 전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2년 금리 동결 선언으로 벌었던 상승분을 다 까먹었다. 무엇보다 은행 주가 폭락은 불길한 예측을 낳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 등은 일제히 “재정위기가 금융위기로 바뀔 수 있다는 두려움이 시장을 엄습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시장 참여자들이 제2의 금융위기 조짐이 두려워 은행주를 덤핑하고 있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분석은 아니다. 유럽 은행들은 그리스에 꿔준 돈 21% 정도를 떼일 상황이다. 재정위기는 포르투갈을 넘어 스페인·이탈리아로 번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유럽 리더들은 “그리스만 예외적으로 원금을 깎아줄 뿐”이라며 “다른 나라 채권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페인·이탈리아가 위기에 빠지면 현재 구제금융(6400억 달러)으론 어림도 없다. 두 나라 빚만 2조 달러(약 2200조원)에 육박한다. 여차하면 은행 금고 속 가장 안전한 자산인 국채가 무더기로 부실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 주택담보대출이 집값 폭락으로 부실화돼 1차 금융위기로 이어진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속젠의 주가 폭락은 1차 금융위기 도화선이 된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리먼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때문에 시장의 불신에 휘말렸다. 더 나아가 리먼은 다른 금융회사들이 자금거래를 기피하는(카운터파티 리스크) 상대가 돼 결국 파산했다. WSJ는 런던 자금시장 사람들의 말을 빌려 “아직 속젠이 기피대상은 아니다”며 “하지만 경영진이 불신을 빨리 진정시키지 못하면 불행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강남규 기자

◆카운터파티 리스크(거래 상대방 위험)=계약 상대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수 있는 가능성. 미국 리먼브러더스는 2008년 자산 부실화 때문에 계약(금융거래)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소문이 돌면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끝내 파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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