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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방파제 1000억 든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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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8일 태풍 무이파가 휩쓸고 가 부서진 전남 신안군 가거도 방파제의 모습. [뉴시스]

지난 7일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항에 불어닥친 태풍 ‘무이파’. 초속 40m가 넘는 강풍은 30여 년간 쌓은 방파제 490m 중 200m가량을 망가뜨렸다. 방파제를 감싸고 있던 64t짜리 테트라포드(TTP·일명 ‘사발이’)와 108t짜리 큐브블록(Cube block) 2000여 개는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무이파’가 이날 기록한 최대 풍속은 초속 42.4m. 이는 바람의 세기를 비교할 때 사용하는 ‘보퍼트 풍력계급’의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바람의 세기를 13단계로 구분한 이 지표 중 가장 센 ‘싹쓸바람’은 ‘초속 32.7m 이상의 태풍’으로만 규정돼 있다.

 가거도는 목포 남서쪽 145㎞에 있는 섬이다. 333가구 500여 명의 주민이 산다. 서해상에서 올라오는 태풍의 진로 한복판에 있어 ‘대한민국 핫코너’로 불린다. 이 섬이 중요한 이유는 태풍이 불면 어선들의 긴급 대피소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거도에는 방파제가 필요해 78년에 공사가 시작됐다. 방파제는 당시 설계파고 8m에 유속·수심 등을 감안해 높이 10m로 설계됐다. 2000년 태풍 ‘프라피룬’이 덮쳤을 때 방파제 64m가 유실되자 제방을 12m(설계파고 8.4m)로 높였다. <본지 7월 1일자 18면>

이런 식으로 설계를 계속 바꿔 10년이던 공사 기간이 30년으로 늘어 2008년 5월 완공됐다. 공사비만 총 1325억원이 들어갔다. 이 정도로도 부족했다. 이번 ‘무이파’ 때는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해안가까지 피해를 보았다. 30여 년 사이 지구온난화 등에 따른 이상 기후로 태풍의 힘이 강력해진 것이다. 2005년 한국해양연구원의 분석 결과에서도 가거도의 설계파고는 12m로 나왔다.

 가거도 방파제 설계를 맡은 혜인이엔씨의 주재욱(77) 고문은 “현재의 방파제 구조물로는 태풍의 중심권에 있는 가거도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방파제 증·개축을 위해선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이다. 해양연구원 측이 내놓은 설계파고(12m)를 적용할 경우 방파제를 16m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방파제를 현재보다 4m 이상 높게 쌓으려면 1000억원 이상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본다.

이번에 파손된 부분에 대한 보수공사 비용까지 합치면 30여 년간의 공사비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가거도 주민들과 선박의 안전이 우선이냐, 예산이 중요하냐를 놓고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신안=최경호 기자

◆보퍼트 풍력계급표=19세기 초 영국의 보퍼트 제독이 고안한 것으로 풍속계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파도, 연기, 나무 등으로 바람의 속력을 추정하는 계급을 말한다. 0~12등급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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