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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디자인에 눈을 떠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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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호 31면

길이 33㎞, 자동차로 바다를 가로질러 달리는 데만 30분이 걸리는 곳. 바로 전북 군산·김제·부안 앞바다를 연결하는 새만금 방조제다. 전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알려진 네덜란드의 자위더르 방조제보다 500m나 더 길다. 이 공사를 통해 간척토지 283㎢와 호수 118㎢가 새로 생겨난다니 그야말로 지도를 바꾸어 놓을 대역사다.

최근 김제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 시간을 내 새만금 방조제를 달려 보았다. 향후 내륙으로 바뀔 지역도 지금은 수평선이 보일 만큼 큰 바다여서 방조제는 그 자체가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선을 이루고 있었다. 시원스레 뻗어 나간 방조제와 가끔씩 눈앞에 펼쳐지는 자그마한 섬들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관광자원이었다.

나라 이름 자체가 ‘낮은 땅’을 의미하는 네덜란드는 방조제가 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자원이다. 육지의 대부분이 바다보다 지표면이 낮은 특이한 자연환경, 물이 새는 방조제를 팔뚝으로 막아 나라를 구했다는 소년 ‘한스’의 스토리를 엮어내 방조제를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네덜란드 방조제를 직접 차로 달려 본 경험이 있는 필자의 눈에는 새만금 방조제가 훨씬 멋지고 아름답게 보인다. 육지가 될 지역에 들어설 산업단지는 차치하더라도 호수 주변의 휴양레저 시설을 조화롭게 건설하고 주변의 먹을거리, 볼거리를 엮어 멋진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면 금상첨화이리라.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 걱정의 소리가 들리는 것은 왜일까?

필자는 7월 6일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다음 날, 세미나 참석차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를 방문했다. 올림픽 유치의 감동과 사진에서 본 아름다운 리조트의 기억으로 기대에 찼던 마음은 리조트 주변으로 다가갈수록 실망으로 변했다. 간혹 들어서 있는 펜션은 그나마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마구 방치돼 있는 철제 컨테이너와 일부 가옥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중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도로변 주유소였다.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획일적인 색깔의 시멘트 블록 건물이었다. 도시는 몰라도 이런 리조트나 관광지에는 주변 환경에 맞게 디자인이나 색상을 달리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난개발로 자연이 준 아름다운 경관을 파괴한 대표적인 예로 한강 주변을 들고 싶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한강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남부럽지 않은 빼어난 경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산을 마구 깎아내고 들어선 흉측한 모습의 숙박시설과 식당들은 우리나라 지자체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어떻게 저런 건물들에 건축허가를 내줬는지 의심스럽다.

알프스로 유명한 오스트리아나 스위스는 집 한 채, 자그마한 구조물 하나 지을 때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그 자체가 관광자원이 될 수 있도록 신경 쓴다. 개인 주택 테라스의 꽃조차도 정해진 규칙에 맞게 의무적으로 가꾸게 할 정도다. 역시 관광대국이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라인강의 그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조차도 사실은 별로 볼 게 없다. 하지만 그곳에선 중간중간 경치와 어울리게 호텔과 식당들을 지어 그림같이 예쁜 마을을 형성하고 유람선 선착장을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개발했다. 자연 그대로만 본다면 북한강이 훨씬 멋있지만, 난개발 때문에 북한강은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

새만금 방조제를 보며 생긴 걱정은 바로 이것이었다. 제대로 된 큰 그림을 그려 놓고 조화롭게 개발해 나간다면 워낙 바탕이 좋아 새만금도 멋진 작품이 될 것이다. 자연에의 순응과 조화야말로 진정한 디자인이다. 관광대국으로 가는 첫걸음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행해진 난개발과 부조화를 새만금에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어디 필자의 마음뿐이랴.

새만금을 달린 그날 저녁에는 김제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청정 총체보리를 먹여 키운 ‘총체보리 한우고기’와 황금보리를 원료로 한 ‘보리소주’의 맛을 음미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만경평야, 그와 연결된 먹을거리의 스토리가 감미로운 맛과 더불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제는 디자인이 경쟁력이다. 아무리 멋있는 자연도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더 늦기 전에 눈을 뜨자!



유상호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일은행·대우증권·메리츠증권을 거쳤다. 2002년 한국투자증권 부사장으로 옮긴 뒤 2007년 사장에 취임했다. 증권업계의 대표적인 국제금융 전문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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