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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를 막는 묘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0호 31면

미국 입국수속을 할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무표정한 출입국 관리요원은 기계적으로 지시를 해댄다. 열 손가락을 모두 펴고 지문 확인을 한 뒤 얼굴 사진을 정밀 대조한다. 출국할 때는 신발을 벗고 꼼꼼하게 검색을 당해야 한다. 길게 줄을 선 채 보안요원의 퉁명스러운 지시를 따라야 할 때는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듯싶다.

죄라면 미국에 온 게 죄겠지만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누가 오라고 했나. 이런 게 싫으면 안 오면 되지.” 얄팍한 자기합리화로 불편한 심기를 누른 채 미국에 갔다 오곤 한다. 모든 게 2001년 9·11 테러 이후 벌어진 변화다. 9·11 테러는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인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된다. 대다수 미국인이 까다롭고 불편한 출입국 검색 절차를 감수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해서 대형 테러를 막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9·11 테러는 이른바 ‘블랙 스완’ 같은 사건이다. 미리 예측이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만약 9·11 테러와 유사한 대형 테러가 발생한다면 이 또한 기존 테러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게 벌어질 것이다. 일부에서는 하나의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수백 개의 선행 조짐이 존재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들어 예측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결과론적 해석일 뿐이다. 복잡계 이론을 비롯해 현재 존재하는 어떤 이론과 통계 프로그램에 의존하더라도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변수를 통제해 신뢰할 수 있는 예측 결과를 제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철통같은 검색이 대형 테러가 아닌 마약·총기 밀반입 등 다른 종류의 범죄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런 범죄 예방을 위해 매년 수백억 달러를 공항·항구 등 통관 검색에만 쏟아붓는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테러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미국식 전시행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 다시 달러를 찍어 내는 방식으로 간신히 국가 부도를 넘긴 미국이 재정적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이런 행정 풍토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 안보에 필요하다면 돈은 무한정 쓸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물 샐 틈 없어 ‘보이는’ 보안검색의 가장 큰 효과는 다른 데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안요원 확충에 따른 일자리 창출과 고용 증대 말이다. 어떤 조직이든 만들어진 순간 강한 생명력을 갖는다. 이 때문에 한번 만들어진 조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9·11 테러는 국토안보부라는 공룡 조직을 낳았고 수만 명의 신규 보안요원이 충원됐다. 그리고 형사사법산업(criminal justice industry)을 키웠다.

범죄 관련 업무를 모두 다루는 형사사법 시스템은 그 자체가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위해서만 매년 200억 달러 이상 쓴다. 경찰 관련 예산은 1000억 달러 이상 소요되고 교도소 운영 예산도 연간 700억 달러 이상 필요하다. 테러를 제외한 순수 형사사법 시스템 유지에만 2007년의 경우 2280억 달러를 투입했다. 근무인력만 250만 명을 넘어선다. 테러 관련 예산 또한 별도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선다. 이래저래 매년 수천억 달러를 각종 범죄 통제에 쓰는 셈이다.

대형 테러 방지 효과가 별로 없을 것 같은데도 막대한 돈을 써대는 미국의 보안검색 실태를 보면 멈추지 않는 형사사법산업의 포식성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보안검색에 들어가는 예산의 일부분을 중동·아프리카의 아랍권 어린이들의 민주화 교육에 지원한다면 훨씬 많은 테러를 방지할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창무 미국 뉴욕시립대 형사사법학(Criminal Justice) 박사. 마르퀴즈 후즈후 세계인명사전 형사사법 분야에 국내 최초로 등재됐으며 저서로 『패러독스 범죄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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