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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민의 역사적 결단

중앙일보

입력

지난 18일 밤, 대만이 새롭게 태어났다. 역사적인 대만 총통선거 개표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양안 사이의 50년 역사는 몹시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지난 수주동안 본토 당국은 대만 유권자들이 대만독립 지지자인 민주진보당의 천수이볜후보에게 등을 돌리도록 위협해 왔다.

공산당과 국민당 모두 천이 승리할 경우 국민당 통치 종식으로만 그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승리할 경우 국민당 통치 종식으로만 그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승리한다면 평화통일이라는 중국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고 중국 지도부는 전쟁을 고려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만 유권자들은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개표결과를 숨죽여 기다렸다. 이윽고 대만 중앙선거위원회가 치열한 3파전에서 천이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대만전역에서 환호하는 천의 지지자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천은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들 앞에 나타나 이렇게 선언했다. "오늘은 대만 민주주의 역사에 새 장을 연 날이다."

대만은 이제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일 듯 싶다. 5천년 중화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인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번 선거는 국민당 통치, 불만섞인 중국의 자제, 양안관계의 '전략적 모호성'등 지난 반세기 동안 중화에 퍼져있던 낡은 유물들을 흔들어 놓고 있다.

어떤 면에서 천의 승리, 다시 말해 국민당의 패배는 50년전 국민당이 본토에서 대만으로 쫓겨난 이래 마무리되지 않고 있던 국·공내전이 종언을 고했다는 대만의 궁극적인 선언일 수도 있다. 새 집권당인 민진당은 그런 옛역사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번 선거가 전보다 위험한 대립의 서막이 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주 총통선거 시작 전까지만 해도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전쟁발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중국의 주룽지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중국 인민은 주권을 수호하고 중화의 영토를 보전하기 위해 피는 물론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대만 유권자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천이 당선된 뒤 축제 분위기로 거리를 가득 메운 지지자들 틈에서 여대생 미기 류(22)
는 "거룩한 순간"이라며 "대만인들이 사랑과 희망으로 위협과 어둠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소리쳤다.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화려한 국민당 당사 앞에서 군중은 계란을 집어던지며 "국민당의 '검은돈'을 타도하자"고 외쳤다.

그런 열렬한 자유의식과 두려움을 모르는 태도는 본토 당국이 '새 천년의 죄인'으로 지목한 리덩후이 통치 시기에 만발했다. 이는 민주개혁을 추진하고 오랫동안 억눌려 온 대만문화의 부흥을 부추겼다. 대만 경제는 활황을 거듭했고 새로운 자긍심이 고개를 들었다. 오랫동안 반체제 변호사로 활동하며 대만독립을 옹호해 온 천은 그런 과감한 새 정체성을 구현하는 인물이다.

현재로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천은 득표율 39%로 37%인 국민당 고위 당료 출신의 무소속 후보 쑹추위와 23%인 국민당 후보 롄잔을 누르고 승리했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변화에 대한 갈망만큼이나 국민이나 국민당 내분에 힘입은 바 크다.

그렇다면 지지율 3분의 1을 겨우 웃돈 천이 역사상 가장 분열된 대만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국민당의 부패 유산을 척결하겠다는 의지와 정적과의 제휴 필요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무엇보다 중국으로서는 천이 과연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대만의 정체성을 옹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천은 속히 대만 유권자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데 주력했다. 지난 18일 밤 당선자 천은 유세기간 거의 내내 걸어온 온건노선을 다시 표방하고 나섰다. 대중국 관계에서 퇴임을 앞둔 이가 내세운 논란 많은 '국가 대 국가' 정책은 지지하되 헌법에 명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중국은 '국가 대 국가' 정책이 '하나의 중국'정책에 위배된다며 분노하고 있다)
.

게다가 천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않는 한 국민투표는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약했다. 당선발표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천은 중국 본토에 '지혜와 용기'로 양안관계를 개선하자고 촉구한 뒤 직교역 노선 개설도 제안했다. 그는 "앞으로 대만은 중국 본토와 건설적인 대화 창구를 구축하기 위해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태도로 나설 것"이라며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보는 대만의 목표이자 약속, 그리고 희망"이라고 덧부ㅜㅌ였다.

지난 15일 발언과 사뭇 다른 어조였다. 당시 천은 한 집회에서 주의 격한 발언에 "대만은 독립·주권 국가이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가 아니다"라는 말로 응수, 청중을 자극했다. 그러나 총통에 당선된 뒤 주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대만방문'을 제안하고 자신의 베이징 방문 의사까지 표명했다.

베이징의 분위기는 몹시 호전적인 양상으로 변해 왔다. 중국은 천의 당선 이후 조용히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본토의 전문가들은 천에게 언제든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 대만연구소의 리자취안은 "대만이 독립을 향해 나아간다면 3~5년 후, 아니 24시간 안에라도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지난주 일본을 방문한 가운데 양측에 "발언수위를 낮춰 긴장을 누그러뜨린 뒤 위협과 대치보다 평화로 사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권했다. 그는 평상시와 다른 병력이동이나 1996년 대만 총통선거 당시처럼 중국이 미사일 전쟁 게임에 나서려는 듯한 조짐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협은 상존하고 있다.

그렇게 위기가 고조된 판에 이번 선거로 신경이 곤두 서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대만은 1987년 계엄이 해제되고 민주주의가 꽃피기 시작한 이래 혼란스런 유세전에 익숙해지게 됐다. 4년 전 대만 사상 처음 치러진 총통선거는 대만이 독재국가에서 현대국가로 발전하는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치열한 각축전으로 치달은 선거는 없었다.

지난주 천에 대한 지지도가 치솟자 국민당은 유권자들에게 천을 지지하지 말라고 설득하느라 혈안이 돼 있었다. 국민당은 유권자들이 존경하는 이총통을 앞세웠다. 이는 천이 총통에 당선될 경우 경제적 혼란과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튿날 증시는 6% 하락했다. 국민당이 광범위한 조직을 동원해 주식거래를 조작한다는 비난까지 있었다. 국민당은 풀죽은 채 전쟁터로 나가는 청년들 모습이 담긴 TV 광고를 내보냈다. 광고에서 국민당 후보 롄은 “민진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젊은이들은 천의 유세용 모자 대신 철모를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은 전에도 국민당으로부터 탄압받은 적이 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대만 최고 학부인 국립 대만대 법대를 수석 졸업한 천이 정치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80년이었다. 당시 그는 국민당 독재 반대 운동으로 체포된 9명 가운데 황신제의 변호를 맡았다. 비록 패소했지만 황은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천은 발아단계에 있던 대만독립운동에서 곧 두각을 나타냄과 동시에 국민당의 블랙 리스트에도 오르게 됐다. 1985년 익명의 괴한으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은 다음날 트럭 한 대가 좁은 길에서 천과 부인 우수전에게 돌진했다. 트럭은 천을 비켜갔지만 그의 부인은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듬해 천은 반체제 잡지 펑라이다오(蓬萊島)
에서 한 유명작가를 신랄하게 비판해 8개월 동안 옥고도 치렀다. 천의 러닝메이트로 부총통에 당선된 여권신장운동가이자 대만독립 지지자인 뤼슈롄도 국민당 치하에서 1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그러나 천은 정계를 떠나지 않았다. 1994년 그는 비국민당 계열로서는 처음으로 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됐다. 천은 불굴의 의지로 시정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가면서 예상치 못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슈퍼맨 망토를 입고 나타나는가 하면 록 콘서트를 개최하고 부패·매춘 단속에도 나섰다.

총통선거 유세중 천은 대중국 관계에서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애썼다. 대만독립을 밀어붙일 생각이 없다는 표시로 말투도 온건하게 바꿨다. 곧 군에 입대해야 할 아들 천즈중(19)
에게 초점을 맞춘 교묘한 광고까지 내보냈다. 광고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들이 전선에 서게 될 텐데 아버지로서 전쟁을 부채질하려 들겠느냐는 점이었다.

천은 ‘대만해협의 항구적 평화’를 이룩하자며 본토와 대화를 모색하기 위한 초당파 위원회 구성도 제안했다. 지난주 대만의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인 리위안저 전 중앙연구원장이 그를 공식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로서는 가장 든든한 소식이었다.

이는 중국에서도 크게 존경받는 인물로 중국 당국으로부터 명예직까지 받았을 정도다. 그는 베이징 평화특사로 파견될 가능성이 있는 자리에 발탁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세 막판 며칠 사이 후보를 정하지 못한 많은 도시 유권자들이 천에게 돌아선 것은 바로 ‘대만의 양심’으로 통하는 이 덕분이었다.

국민당과 베이징이 구사한 협박전술은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중국은 전에도 똑같은 전술을 동원한 바 있다. 1996년 대만 총통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중국의 미사일 시험발사는 중국에 눈엣가시였던 리덩후이의 압승으로 연결됐다.

지난달 중국이 대만 침공 운운한 백서를 발표한 직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대만 주민의 45%가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으로 자처하고 나섰다. 전보다 10% 상승한 비율이었다. 정치학자 양녠쭈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대만 유권자들은 천에게 표를 던짐으로써 중국에 ‘우리 미래는 우리가 결정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중국을 자극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중국이 대만에 제공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많은 대만인에게 이번 선거의 요체는 대중국 관계가 아니라 대만 내부 변화였다. 유권자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청년층은 어려서부터 유일 집권당인 국민당밖에 모르고 자랐다. 국민당의 부패와 비민주적 행태에 특히 분노하고 있는 계층이 바로 그들이다.

변호사 추황취안(邱晃泉)
은 “장기적인 대만 안보의 관건이 바로 민주주의”라며 “국민당 퇴진은 대도약의 계기”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길을 닦은 인물이 이총통일지라도 그는 부패·정실주의·금권정치라는 유산을 남겼다.

천의 바람이 바로 부패·정실주의·금권정치 근절이다. 천은 선거 직전 뉴스위크와 가진 회견에서 “정당들의 평화적인 변신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없다”며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대만의 성쇠가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천의 앞날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그는 대만의 대표성을 입증해야 한다. 우선순위에 올라 있는 사법·선거제도 개혁 등 대만 내부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기에 앞서 점차 소수로 전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관과 군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본토 출신 후손들 마음에 먼저 들어야 한다. 게다가 정치적 제휴세력을 구성해야 할 필요도 있다. 민진당이 지방정부를 많이 장악하고 있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경험을 쌓은 인물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민진당은 입법원(立法院)
총의석 2백25개 가운데 70석 뿐인 반면 국민당은 1백23석에 이른다. 전문가들 추정대로라면 수십억 달러에 상당하는 국민당 불법자산을 ‘정화’하겠다는 천의 공약이 그런 의석수로 실천에 옮겨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천은 역사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지지세력 일각에서조차 본토 위협에 맞서기에는 그의 나이가 너무 어리며 경험이 없는데다 국제문제에 대한 이해력에도 한계가 있지 않나 우려하고 있다.

지난 18일 밤 대만은 희망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자신들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의식도 갖게 됐다. 고교생 발라 류(17)
는 “아기의 탄생을 바라보는 것 같다”며 “아기를 우리 이상대로 양육해 큰 그릇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위협은 아예 사라지고 없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제 천과 중국이 전쟁 아닌 평화를 분만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일만 남은 셈이다. [뉴스위크=Brook Larmer, Mahlon Meye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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